"환자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병원에 가면 언제나 듣게 되는 그 말. 한국의 병원은 하루가 다르게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화려해지지만 이 풍경만큼은 몇십년째 변하지 않았습니다.

원망도 해 보고, 재촉도 해 봐도 간호사는 또다시 바쁘게 사라집니다. 바쁜 간호사의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건만, 서럽고 화나는 마음도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간호사는 매일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아니, 환자들은 왜 복잡한 병원에서 헤메고,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이런 퍼즐을 풀기 위해 먼저 '간호노동'의 현실을 들여다 봐야 하는지 모릅니다.

전국의 환자들이 서울의 큰 병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환자만족도 1위, 인증평가 1등급, 최신 영상검사장비도입, 검진센터 개원 등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광고물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진료실 앞 대기줄은 끝이 없다. 같은 진료과목이라도 명의를 선택했다면 한 달 뒤를 기약해야 한다.

쫓기듯 진료를 보고 나와서도 갈 길이 멀다. 층층이 구불구불 미로 같은 큰 병원에서 채혈실, 영상검사실, 원무과를 찾아야 한다. 큰 병원들은 약식으로 도착지를 표시한 인쇄물, 경로를 색깔로 표시한 바닥줄, 안내요원과 자원봉사자, 안내용 로봇까지 저마다 대책을 마련하지만 휠체어와 폴대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와 큼직한 영문 알파벳 앞에서 환자와 보호자의 초조함은 커질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검사실에 도착해 온 몸으로 존재감을 한껏 뽐내보아도 이미 차례는 저만치 밀려 있다. 알아보겠다며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는 간호사의 침착한 시선이 야속하다. 피를 뽑고 검사기기의 작동음을 들으며 진료실부터 검사실까지 최단경로를 고민하지만, 다음 진료부턴 오전에 검사를 받고 오후에 진료를 보라고 한다. 청산유수로 쏟아지는 안내와 촘촘하게 들어찬 예약완료 화면이 까마득하다. 전날 저녁부터 굶고 가장 빠른 검사를 마치면 다시 오후 진료시간까지 붕뜬 시간을 감안하면 직장인도, 지방인도 큰 병원의 문턱을 밟기 위해 꼬박 하루가 필요하다. 의사의 진료가 3분이 아니라 30분으로 늘어나더라도 환자가 그 진료를 받고자 들이는 인내와 시간에는 비견될 수 없을 것이다.

서울 큰 병원에 바로 입원하는 일은 정기적으로 외래진료실을 방문하던 환자에게도, 동네병원에서 발급해준 진료의뢰서를 제출한 환자에게도 쉽지 않다. 언제나 환자가 빼곡한 큰 병원에선 입원일을 예약하거나,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혹은 다른 병원을 알아보는 일이 다반사다. 환자들은 이제 우스개소리로 하던 ‘응급실에 밀고 들어가라’, ’집안에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나도 어떻게 좀, 목소리를 키우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야지 않았을까.

혼자 손해보는 것 같은 소외감은 입원 후 더 짙어진다. 앞 사람의 흔적으로 정돈되지 않은 병상, 똑같은 질문만 반복하는 간호사, 간이 안 된 병원식, 움직임을 방해하는 주사바늘, 주렁주렁 열린 콧줄과 수액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의사까지. 그 와중에 환자는 복용할 약을 기다리고, 수액이 다 투여될 때까지 기다리고, 휠체어를 밀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이동침대에 누워서 다시 기다리는 불규칙하고 기약없는 기다림을 반복한다. 할 일에 치여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에서 이탈해 있다는 것이 실감날수록 심난한 마음에 자꾸만 삐뚜름한 생각이 든다. 간호사들은 화장실 갈 틈도 없이 바쁘다더니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밥 먹을 시간도 없다더니 전화기를 손에서 놓질 않는다. 어느 모로 봐도 환자를 간호하는 모양새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그 또한 간호의 일임은 분명하다. 눈부신 과학기술과 현대의학의 발달은 간호사들을 간호캡과 등불에서 해방시켰지만 압박스타킹을 신은 채 하루 3만 보씩 컴퓨터가 탑재된 간호카트를 끌고 병동을 누비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간호카트에서 약을 꺼내 배분하고 투약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전화기를 붙잡고 간호사는 기다린다. 의사가 처방을 바꾸고, 처방약이 약제실에서 배송되기를 기다린다. 그뿐일까, 요청한 이송인원이 병동에 도착하지 않으면 의료기사에게 조금만 기다려달라 호소해야 한다. 읍소하고 협박하는 대상도 그때그때 다양하다. 조리실 영양사, 약제실의 약사, 원무과의 행정직원, 의국의 레지던트와 인턴, 같은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와 미화원 등. 환자는 스쳐 지나쳤을 여러 직군의 종사자들이 무탈히 서비스를 전달하도록 간호사는 동분서주한다.

Image created by DALL·E3 plugin in ChatGPT4

Image created by DALL·E3 plugin in ChatGPT4

간호사라는 직업만 가리면 간호사가 실제로 하는 일은 사회초년생들이 경험하는 한국의 직장생활 그 자체이다. 대학에서 학습한 지식과 기술의 쓸모없음에 좌절하고, 취업공고에 기술된 직무를 월등히 뛰어넘는 노동에 허덕인다. 하지만 그래서 의아하다. 간호사를 배출하는 간호학과는 하루아침에 전공이 사라지는 시대에도 전국 대학에서 신설되고 입학정원은 지속해서 확대되었다. 2023년 간호대학 입학정원은 약 2만 3천 여명. 15년 전에 비하면 2배나 증가한 수치다. 거기에 취업이 잘 된다는 유명세를 증명하는 높은 입시경쟁률과 취업률은 대학의 단골 홍보소재다. 힘들게 입학해 취업까지 잘한 간호사들은 대체 왜 인력부족에 시달리는걸까?

질문에 대한 답하기 위해 먼저 대학을 갓 졸업한 간호사들이 취직하는 첫 직장인 병원을 상상해보자. 상가건물에 촘촘히 자리한 의원에 익숙한 한국인이라면 의료기관과 의료서비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서 환자분이 가야 할 곳과 필요한 처치는 진단을 내리는 의사에게 달려있다. 아무리 열심히 검색해보아도 어떤 의료서비스를 얼마나, 어떻게, 누구에게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한 정보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의 차이가 있다고 병원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인의 자랑거리가 된 국민건강보험이 보험을 적용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중고차나 집처럼 구매자와 판매자가 가진 정보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건의료 서비스도 구매하는 환자와 제공하는 병원 간 정보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는 건강보험제도를 통해서 병원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격을 통제한다.

서비스의 가격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수익을 늘리고자 하는 경영자에겐 지출을 줄이려는 유인이 발생할 것이다. 더구나 소비자인 환자는 서비스의 질을 평가할 수 없고, 설령 질이 낮은 서비스라도 그 비용을 본인이 온전히 감당하지 않는다.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선택할 수 있는 의료기관조차 줄어든다. 그렇다면 병원은 의료와 간호 서비스의 질을 높이거나 효율성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단 ‘의료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준까지 생산하는 의료의 질을 감소’시킨다는 선택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남이 정해준 가격표로 올릴 수 있는 매출이 뻔히 예측된다면 병원은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직군별 인력을 충원하길 포기한다. 대신 병원은 사고가 터지지 않는 한 최소한의 인건비로 최대 효율을 내는 간호사에게 업무를 몰아준다.

적절한 설명인가? 제도나 문화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은 일본에서 한국의 과거와 미래를 훔쳐보는 것이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가격이 통제되어 있어 그렇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다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틀린 그림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