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현재 전국 의대생 수는 3,058명. 이 중 66.2%에 해당하는 2,023명의 의대생은 수도권이 아닌 각 지역에 있는 의과대학에 다닙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 '전국의사조사' 에 따르면 전국 의사의 무려 73%가 의사면허 취득 후 수도권에서 수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더욱 큰 미스테리는 이와 동시에 의사들의 64.6%가 본인이 졸업한 의대 연계병원에서 수련받았다고 응답했다는 점. 혹시 의사면허를 받으면 시공간을 축소하는 능력이라도 갖추게 되는 것일까요?

의사들은 면허를 받고 나서 어디서, 무엇을 할까요? 이와 관련하여 정부가 내어놓은 공식 통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정리하여 발간하는 <전국의사조사>를 참고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장 최근 보고서인 <2020 전국의사조사>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사람 중 64.6%가 본인이 졸업한 의대와 연계된 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면허를 취득하고 나서도 독립적으로 병원을 운영하거나 진료를 하기보다는 추가적인 교육을 받기로 한 셈입니다. 의사들이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에 비해서 다소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조사에 참여한 사람 중 63.3%가 서울에서, 73.0%가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에서 수련 받았다는 숫자도 동시에 등장합니다. 이 두 가지 방향의 숫자는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 걸까요? 이와 같은 현상은 '서울 쏠림'을 유도하고 강화하는 전공의 선발과 양성 구조 속에서 가능합니다. 정나름의 첫 번째 글( 🐳바로가기)에서 우리는 의과대학이 허가받은 곳과 실제 운영되는 곳이 다르고, 서울은 병원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실효정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의과대학의 위치와 연계된 수련병원의 위치가 중요해지는 이유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전공의 선발에 대해 다룹니다.

왜 서울에 전공의가 쏠리게 되었나?

한국 사람들은 유달리 전문의 자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탓에 의과대학을 졸업한 대부분의 의사가 전공의 과정을 거칩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2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사망한 사람을 제외하고 의사 면허가 있는 사람은 13만 2,065명입니다. 2021년에 전문의 자격이 있는 사람은 10만 6,011명이니, 전체의 80.3%가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셈입니다. 이 숫자만 해도 상당하지만 사실 2021년에 전문의 자격이 있으려면 인턴 1년과 레지던트 3년(대부분 4년)을 거쳐야 하니 빨라도 2017년에는 의사 면허가 있어야 합니다. 분모를 2017년의 면허 의사 수인 12만 1,638명으로 바꿔보면 비율은 87.2%로 훌쩍 뜁니다.

대부분 의사가 전공의 수련을 받고 전체 의사 중 전공의가 1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의과대학의 배치만큼이나 전공의 수련이 이루어지는 방식과 위치 역시 중요하다고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수련병원의 상당수가 수도권에 위치한 대형병원이기 때문에 '전공의 수련 과정'은 서울 쏠림을 악화시키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의 64.6%가 본인이 졸업한 의대 연계병원에서 수련받았지만 동시에 73.0%가 수도권에서 수련받을 수 있었던 '미스테리'는 이 과정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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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글( 🐳바로가기)에서 전공의 정원 배정을 고려했을 때 서울에는 45.8%, 수도권에는 53.1%의 의대 정원이 배정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경기도에는 이 숫자에 반영되지 않은 중간 규모의 지역 의과대학 연계 병원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많다는 설명도 같이 드렸습니다. 경남 김해로 설립 허가를 받았지만 부산으로 분류했었던 인제대의 경우 수도권에 2개의 병원(서울 1, 경기 1)을 갖고 있습니다. 경북 경주에 있는 동국대 역시 경기 일산에 병원이 있고, 경기도로 분류했었던 한림대는 수도권이 병원이 총 4개(서울 2, 경기 4) 있습니다. 충남으로 분류되었던 순천향대 병원 역시 수도권에 병원이 2개(서울 1, 경기 1) 더 있습니다. 거기에 의과대학을 끼고 있지 않은 수도권 중소병원 중에도 전공의를 배정받은 곳이 있으니 수도권에서 수련 받은 전문의의 숫자가 73.0%가 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서울 쏠림, 알고도 못 막았다

이쯤에서 왜 서울로 가는 사람만 있고 지방으로 가는 사람은 없나? 라는 의문을 갖게 된 독자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전공의가 무엇을 배우고 익혀, 어떤 전문의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없습니다. 다만, 전공의 수련을 맡고 있는 각 전문과목 학회가 만든 수련프로그램을 보건복지부가 고시의 형태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각 학회가 노력한 덕분에 이전에 비하면 수련프로그램의 내용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각 수련병원은 대형병원에서 일할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의 양성을 목표로 수련을 진행합니다. 같은 과 안에서도 여러 개의 세부분과가 있어 내가 찾아가야 하는 곳이 어딘지 고민하셨던 적이 있을 겁니다. 정형외과면 정형외과지 왜 어깨 보는 사람 따로, 팔꿈치 보는 사람 따로, 손목 보는 사람 따로 찾아가야 하는건가 하고요.

상당수의 전공의는 그걸로도 부족해 세부 분야를 따로 정해 익히는 전임의(fellow) 과정을 거칩니다. 좁고 깊은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방식으로 틀이 짜여져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공의를 교육할 자격이 있는 병원, 일명 ‘수련병원’ 은 복지부가 운영하는 심의기구인 수련환경평가위원회로부터 심의를 받아 운영하지만 이 제도 역시 ‘좁고 깊은 전문성’ 을 장려하는 병원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수련환경이 좋은 병원에 전공의를 배정해야 한다는 수월성 논리는 일견 타당하지만, 포괄적인 진료보다는 전문진료를 할 능력을 갖춘 의사를 키워내는 서울의 수련병원에 전공의를 배정하자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전공의 정원이 의대 졸업자보다 많았기 때문에 가만히 두면 의대 졸업자 대부분이 수도권으로 가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이 문제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복지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전공의 정원을 꾸준히 줄여 전공의 정원과 의대 졸업자의 수가 일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병원, 비인기과 충원이 부분적으로 개선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전공의 정원의 수도권:비수도권 비는 6:4였습니다. 그나마도 레지던트는 거의 없고 인턴만 있는 지방의료원의 정원이 반영된 숫자이고, 레지던트로 한정하면 수도권:비수도권의 정원 비는 7:3에 가깝습니다. 최근 정부는 이 비율을 5:5로 조정하려다가 학회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결국, 정부는 의과대학과 연계 수련병원의 기존 배치가 젊은 의사들이 수도권에 있는 대형병원에서일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묵인해왔던 셈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의과대학 교수 역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전공의는 시간을 많이 줄여서 “주 88시간” 일하는 “알짜 인력"이기도 합니다. 전공의가 ‘레지던트 Resident’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수련병원의 의사 업무 상당수를 맡아 24시간 쉬지 않는 병원을 가능하게 하고, 그러느라 병원에 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주로 수도권에 있다는 건, 밤을 새워 입원 환자를 받고, 수술을 하고, 응급실을 운영하는 일이 수도권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서울 쏠림 강화하는 대학병원의 순혈주의

여기까지는 서울로 전공의가 쏠리는 제도적 맥락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채용 업무를 맡아보신 분이라면 금방 이해하시겠지만 사람을 뽑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병원 일은 여러모로 힘들고 조직 관리의 실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대에 뒤쳐졌지만 ‘까라면 까는’ 도제식 교육을 너무 못 견디고 도망갈 사람을 뽑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전공의는 대체인력을 구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들어오면 그만두지 않고 기간을 다 채울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학병원들은 이런 채용과 선발의 곤란함을 잘 알고, 이런저런 관계로 얽혀있는 ‘자기 학교’ 학생을 많이 뽑는 것으로 극복해 왔습니다. 이것이 연계 수련병원의 위상이 의과대학의 위상과 직접 연결되는 이유이고, 곧 의과대학의 실제 위치가 연계 수련병원이 위치한 곳으로 바뀌는 핵심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