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많은 의견이 오갔습니다. 정부는 각 대학 별로 증원 가능한 규모와 당장 늘릴 수 있는 인원, 일정하게 준비가 되었을 때에 증원 가능한 학생 수는 얼마나 될 지를 질의하고 이를 취합했습니다. 대학 별로 제출한 “원하는 의과대학 학생 수”를 모두 합쳤을 때의 수는 상당한 수가 되었다고 해요(👉관련기사 바로보기: “의대 정원 3058명→7011명 희망” 전국 의대 40곳 다 증원 원했다) .
일각에서 의대 정원 증원이나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등 정부 정책에 찬성하는 의사들의 의견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만,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필수의료를 수행할 의사가 없고, 비수도권 지역에서 일할 의사가 없고, 당직을 설 의사가 없고, 대학병원 의사들이 과로에 시달린다면 함께 일할 의사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의사들의 입장은 명확해 보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모순적이어 보이기까지 하는 의사들의 의대 정원 증원 반대는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반대’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유구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아시나요?
HSC에서 몇 번 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기는 했습니다만, 시대가 다르니 의대 증원에 대한 입장과 이유도 달라졌으리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궁금점을 풀어보고자 요번 글에서는 오래된 신문 기사에서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한 의사들의 입장을 확인해 ‘반대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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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의사는 언제 탄생했을까요? “태초부터 의사가 있었다” 같은 설화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말이예요. 현재와 같이 의사 국가시험에 의대수료자만 응시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제도는 1957년 국민의료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습니다. 지난한 전쟁을 마치고 나라의 체제를 새롭게 확립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대한민국이 나라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셈이지요. 의대 진학, 현재 의사가 되는 유일한 방법으로 남아있는 이 방식은 당시 사회가 합의하고, 국가가 승인한 '통치 제도'인 셈입니다.
57년 당시 정부는 의대에 입학한 사람만 의사가 되는 길을 열어주는 제도를 도입했었는데요, 이후 정부는 1968년 ‘의사수급 장기계획’을 마련하고, 무자격 의료영업자로 분류되던 이들에게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기로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사 국가시험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아주 많지는 않아서, 의대 정원은 곧 의사 정원과 같은 말이 되었습니다.
1957년 11월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의대를 졸업하지 않은 “무자격 의료영업자”들이 의대 졸업자들에게만 의사 면허를 부여하는 이 법률에 반대 기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면허제도가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영업을 해왔던 무면허의료업자들은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게 되는 상황이니 그럴 만도 했겠죠? 그 당시 한국의 의사 수는 만 명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으니, 의사를 만나기 어렵고 의료비를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은 비교적 저렴한 돈으로 만날 수 있는 무면허의료업자들을 찾아가기도 했을 거예요.
의대 입학 정원이 곧 의사 정원이 되도록 만든 법이 만들어진 지 약 10년이 지난 1968년, 경향신문에는 <의사수급장기계획 마련>에 대한 기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무의면 해소를 위해 기존에 무자격 의료영업자로 분류되던 이들에게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주고, 합격한 사람들을 의사가 없는 벽지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의료 정책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의사들은 북한 김일성 정권에서 의사면허(펫셀면허)를 받은 의사들을 한지의사 자격으로 무의촌에 보내달라고 호소하기도 하였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