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우리는 이 글에서 간호사의 이직의 허와 실을 살펴봅니다. 간호사의 ‘그만둘 결심’은 유연화된 노동시장의 무책임한 힘이 추동하는 불안정과, 불안정의 원인이 되는 악순환 구조 안에 있습니다. 불안정의 굴레를 끊지 않으면 간호사의 높은 이직률은 해결이 난망하지 않을까요? 당연하게도 그 위에 서 있는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도 흔들릴 밖에 없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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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이직을 둘러싼 논의를 살필 때면 꼭 있어야 하는 말이 없는 듯한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게 뭘까? 손에 자꾸 맴돌기만 하고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길 몇 달. 다른 연구를 하다가 번뜩 ‘실업’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어떻게 이걸 놓쳤지? 아차 싶다가도 ‘이직’과 ‘실업’ 두 단어의 괴리만큼 간호노동의 고용구조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것도 없겠다고 결론지었다.
간호사들이 하던 일을 그만 두고(사직),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구직) 이 과정은 꼭 실업인데, 그 누구도 이를 실업이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직장을 옮긴다는 의미의 ‘이직’이라는 쉬운 단어가 그 자리를 대체한다. 이 과정을 이직이라 부를 때, 직원을 괴롭히기 보다는 존중하는 조직문화를 만들고, 업무와 시간 분장을 적절하게 하는 노동환경을 구축하고, 적정한 임금을 보장하라 권하면 된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이직이 계속 발생한다면, 그건 인력이 부족한 탓이니, 인력을 충원하면 될 일이다. 이 모든 노력이 통하지 않을 때, 높은 이직률의 책임은 병원도 시장도 아닌 일하다가 버티지 못해 그만두거나 직장을 옮긴 개인에 두면 된다는 점에서 이직은, 쉽다. 이직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역시 개인이 선택한 결과이므로, 그 해결의 몫도 개인이다. 이직의 개인화는 아주 흔한 (그렇지만 나쁜) 전략 가운데 하나고, 지금 간호사 이직에 대한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실업’이라는 틀로 간호사들의 사직과 구직에 관심을 두면 뚜렷한 해답이 나오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간호사 이직을 포함해 이직 양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실업의 정의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실업의 사전적 정의는 “일할 의사와 노동력이 있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거나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태”다. 이 정의는 주로 고용 통계를 작성할 때나, 실업을 조건으로 한 제도 급여 대상자를 가려낼 때 등 행정상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조작적 정의를 따르는 우리의 이해보다 한참 넓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실업을 정의해야 하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실업급여를 이용할 때가 가장 흔한 사례다. 제도적 정의에 따르면 15세 이상 노동가능인구 가운데 경제활동에 참가하려는 사람들 중(경제활동인구) “지난 1주 동안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도 일하지 않고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였던 사람으로서 일이 주어지면 곧 바로 취업할 수 있는자”일때 실업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인정된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 제도가 관심을 가지는 실업은 ‘비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와 구직이 ‘장기화’되는 경우다.
간호사의 이직은 (사실 여부를 떠나) 자발적이고, 단기간 내 새 직장으로 취업이 보장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제도가 미치는 영향은 꽤 크다. 이 표면적인 자발성과, 더욱 근본적으로는 높은 취업 또는 고용가능성(employability) 때문에 사전적인 정의에 따라서는 실업인 이 과정이 제도적 판단에서도, 우리의 이해에서도 실업이 아니게 된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온라인에서 판매 중인 간호사 report sheet의 표지 디자인
지난 글에서 짚었듯이 간호사의 이직은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경계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여있다. 간호노동의 조건은 매우 불안정하다. 업무강도가 높고 공짜노동 시간이 긴 반면, 법이 규정한 최소한의 쉬는 시간도 보장 받지 못하는 비율이 높다. 노동자의 삶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교대 근무를 해야 할 때도 많다.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임금 수준은 그를 따라가지 못한다. 날카로운 의료 도구, 위생 유지를 위한 약품 등 일하다가 다치거나 사고 당할 위험도 도처에 깔려있다. 안전의 위험에는 간호사 집단 내에서도, 다른 직역 간에도 위계적인 직장 문화도 포함된다. 간호사 간 위계 관계는 ‘태움’으로 드러난다. 법으로도 보장하는 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위계관계는 지도(의사)-보조(간호사)라는 미명하에 의사로 하여금 간호사에게 대리처방이나 수술과 같은 불법을 지시한다거나, 본인의 상급자로부터 비롯한 불쾌와 불만을 나쁜 말과 행동으로 간호사에게 표출하도록 한다.
간호사가 사직하는 이유는 이처럼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가 충족 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노동자의 기본 권리를 말하는 이유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개인이 고군분투하는데 더해 조직적이고 제도적 차원에서 간호사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사회적 제도의 부재, 그리고 그 결과가 만든 결심을 그저 ‘자발적 선택’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이 질문은 간호사 이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다. 간호사의 (재)취직과 (재)취업은 (노력을 포함한) 개인 역량 문제로 다루어지기 쉽다. 간호사 면허의 존재와 만성적 ‘인력 부족’은 이러한 이해를 더욱 강화한다. 예컨대 간호사 면허와 의지만 있으면 병원이나 의원말고도 간호사를 찾는 곳은 많다는 글이나 영상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간호 노동시장에 한해 병원이 간호사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말은 자연스러운데 간호사가 일할 곳을 찾지 못해 ‘구직난’을 겪고 있다는 말은 생소하다. 이 논의에는 간호사들이 이기적이다, 눈이 높다 등의 말들이 따라 나온다. 심심치 않게 성차별을 동반한 평가도 따른다.
노동시장 유연성? 유연성!
문제는 이 고용가능성을 설명하는 이론적 논의조차 이들 개인의 역량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고용가능성은 원래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다.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새로운 고용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노동시장의 제도적 노력 및 자원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개인적인 맥락으로 축소해 재취업의 가능성을 판단하고 설명하려는 이해도 유연화된 노동시장의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유연성은 노동자의 고용과 삶의 안정보다는 사용자들이 경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된다. 그래서 경기가 어려우면 쉽게 해고하고, 경기가 좋으면 쉽게 고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이를 외부 수량 유연성이라 일컫는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대응하기 위해 ‘임시’로 간호사 정원을 늘렸다가, 유행이 주춤하자 비용 절감을 이유로 임시로 늘렸던 정원을 줄이겠다는 공공병원과 국립대병원의 이른바 ‘혁신안’은 대표적인 유연화 전략이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려 할 때에는 노동자가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것을 보장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직장을 옮기더라도 고용 상태를 유지하는 데 제도적 관심을 기울인다. 다만, 노동자가 고용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 이들이 고용주와 맺는 고용관계가 안정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노동권 행사 권한, 임금, 권한, 고용 기한 등은 노동자들이 당연하게 바라서는 안 되는 노동의 어떤 속성이 되어 버렸다. 또한 외부 수량 유연성으로 노동자가 상시 고용상태에 놓여 있을 수 있는 고용안정성을 마련해 두었으니, 사직이나 실업은 또한 의지를 갖고 노력하지 않는 개인의 탓이 되어 버리는 셈이다.
간호사 이직에서 유연성이 갖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