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는 누가 책임져야 할까?

필수의료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는 ’면책’하자는 주장에 대하여

'필수의료' 분야 인력 이탈이 연일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눈에 띄는 주장이 하나 있다.

고의나 중과실 없이 정상적인 필수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반드시 의료인에 대한 기소나 형사처벌을 면제하도록 해야 한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인력난이 계속되니, 의료사고의 법적인 책임에서 의료진을 자유롭게 해 주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2017년 말 서울 모 사립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는 신생아 여럿이 동시에 패혈증에 걸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패혈증은 미생물에 감염되어 전신에 심각한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질환으로 매우 치명적이다. 하지만 기민하게 감염 문제를 파악해야 했던 전공의는 정원을 다 채우지 못해 부족한 상태였고, 중환자실 안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했을 교수는 투병 중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여러 환자가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교수와 전공의가 잡혀갔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의 법 안에서 이 문제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 의사다.

그렇지만 2023년의 병원에서는, 아니 현시대의 어떤 병원도 의사가 의료의 모든 과정을 담당하지 않는다. 잡혀갔던 의사들은 책임질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았다. 과정이 괴롭고 힘들기는 했겠지만, 의사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죽은 환자들과 그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기도 하다. 갑자기 가족이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니? 필수의료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면책’을 부여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지금, 이 간극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의료사고는 왜 일어나나?

의료사고는 크게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는 경우와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만 정말 불운하게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통상 무과실 의료사고가 여기에 해당한다. 기계도 조금만 복잡해지면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사람의 몸에서야 말할 것도 없이 이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와 반대되는 경우는 의사가 명백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환자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다. 모 유명 가수를 포함해 여러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외과의사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는 첫 번째와 의사에게 명백히 책임이 있는 두 번째 사이에는 국가, 병원, 의사 모두가 조금씩 책임이 있는 세 번째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의료사고가 여기에 포함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해야 할 관리와 감독을 조금 느슨하게 하고, 병원은 환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고, 의사는 통상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아주 조금 환자에 주의를 덜 기울이는 정도로도 의료사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는 누가 하는 일인가요?

그러나 의료행위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의사 뿐이 아니다. 흔히 의료행위는 의사가 하는 일로 되어 있지만 병원을 잘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비교적 간단한 진료만 이루어지는 의원에서도 접수를 받는 사람과 의사의 진료를 돕는 사람 정도는 있어야 의료행위가 이루어진다. 의료행위가 복잡할수록 의료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서, 대학병원 정도가 되면 누가 어떻게 참여하는지도 알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접수를 받아주는 사람, 검사실로 이동하는 카트를 끌어주는 사람, 검사 기계를 작동시켜 의료 영상을 찍어주는 사람, 피를 뽑는 사람, 뽑은 피를 검사실로 나르는 사람 등등이 모두 너른 의미에서 의료행위에 참여한다.

그렇다, 의료는 언제나 크든 작든 팀 단위로 이루어진다. 의료를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팀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우리는 병원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의료행위를 하다가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은 의사가 진다. 의사가 종국적인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팀 단위로 이루어지는 의료의 성격과는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의료분쟁에서 빠져나가는 병원

여기에 살아있지만 처벌 받지 않는 사람이 있다. 법의 효력에 의해서 법 안에서만 살아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법인(法人)이라고 부른다. 병원은 법으로만 살아있어서 책임을 지지 않고, 책임은 언제나 서명을 한 의사의 몫이 된다. 그렇지만 의료행위에서 생기는 문제가 그저 의사 개인의 ‘주의의무 위반’ 때문에 생긴다고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