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K-상병수당, 아파도 괜찮은 사회를 위한 미래가 될 수 있을까요? 현재 2단계 시범사업을 시행 중인 상병수당의 도입은 한국 사회보장의 마지막 조각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의 상병수당은 여전히 아프면 쉴 수 있다는 안심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상병수당의 궁극적인 목적, 일하는 사람의 건강 돌봄을 떠올려봅니다. 그렇다면, 일과 건강에 대한 더욱 너른 이해를 바탕으로 누구든지 아프더라도 안심하며 매일을 잘 지내기를 바라고, 또 지원해야 합니다. 오늘 HSC는 K-상병수당에 대해 요모조모 짚어봅니다.

K-상병수당 요모조모는 시리즈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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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지금 글을 읽는 여러분이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생계 유지를 위해서든,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일하는 이유는 무엇이든 좋아요. 여러분은 좋은 날에도 궂은 날에도 열심히 일하며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때로는 혼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요, 예상치 못한 어느날 갑자기 몸과 마음이 아프고 고달파 도무지 일터에 나가 일하기 어려운 상태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참고참았는데, 어쩐지 컨디션이 나아지지 않아 마음먹고 하루 연차를 내고 병원에 의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이런 저런 검사와 함께 진찰을 끝낸 의사가 “어떻게 참으셨어요?” 되묻습니다. 이어서 말합니다. “이 상태면 지금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입원도 하고, 장기적인 치료도 받아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말도 가능하겠네요. “다행히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그래도 정기적으로 내원하셔서 치료받고 처방 받으세요. 진행 경과를 보면서 병원에 오는 횟수는 조정해 봅시다.” 의사의 조언이 이어집니다. “치료 받는 동안은 무엇보다도 잘 먹고 잘 쉬고, 충분히 자야해요. 스트레스 받지말고 아, 야근도 최대한 안 하는 게 좋아요. 일은 줄일 수 있으면 줄이세요. 그래야 건강이 빨리 회복됩니다.”

건강을 돌보며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들은 여러분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올해 연차가 며칠이나 남았더라? 우리 회사에 병가가 있던가? 유급이었던가, 무급이었던가? 애들은 누가 돌봐주지? 프로젝트 도중에 쉬면 동료들에게 민폐인데… 거래처에는 어떻게 말하지? 대체 인력을 구해야 하나? 아니, 일을 그만둬야 하나? 치료 끝나고 일터로 복귀할 수 있을까?’ 등 온갖 걱정이 떠오르지 않나요?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연차나 병가 같은 고민은 사치일 수 있겠어요. 당장 생계 걱정에 눈앞이 캄캄해졌을 수도 있을테고요.

상황을 조금 비틀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없이 아파서 일하지 못하고 쉬어야 하는 상황은 그대로 입니다. 대신 여러분은 일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잃을 수 있는 소득의 일부를 나라로부터 보장 받게 됩니다. 거기다가 직장인이라면 아파서 일을 쉬는 기간 동안 해고 당하지 않도록 법으로도 보호 받을 수 있구요. 어떤가요? 이런 조건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마음 편하게 건강을 돌볼 수 있을 듯하지 않나요?

아프니 쉬라고요?

이처럼 아플 때 쉴 수 있도록 소득과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를 더 이상 상상 속에만 둘 필요 없습니다. 정부가 2025년부터 일하는 사람들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아픈 기간 동안 소득을 보장해주기로 했거든요. 이 제도의 이름은 바로, ‘상병수당’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HSC의 글 주제는 <상병수당>입니다. 일상 생활 공간에서 ‘상병수당’이라는 단어는 아직 낯선 듯하지만, 이미 2022년 여름부터 시범사업도 시작됐습니다(👉국민건강보험공단 누리집 상병수당 소개 보러 가기). 2024년 2월 현재, 2차 시범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고요.

상병수당이 뭐고, 왜 만들어졌는지 간략한 소개가 필요할 듯하네요. 장기간 돌봐야 하는 건강 문제가 수반하는 고통 가운데 하나는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의 상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소득 상실입니다. 상병수당은 바로 이때 아프기 직전 벌던 소득의 일부를 보장해 줌으로써 생활 토대가 무너지지 않게 받쳐주는 사회안전망의 일부입니다. 아래 그림이 보여주듯 좋지 못한 건강 상태와 빈곤의 악순환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요. 상병수당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자원이 되는 셈입니다. 노동과 이를 통한 소득이 살아 갈 조건의 기본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병수당은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사회보장 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일하지 못하게 되면 나라 살림을 꾸리는데 큰 타격을 입기 때문에, 사람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산업사회의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그래서 전세계적으로 상병수당이 없는 나라는 극히 드물 뿐 아니라, 심지어 고용, 연금, 건강보장 등 모든 사회보장 제도에 앞서 마련된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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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쉬기 위해서는 소득 말고도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는데요, 쉬면서 건강을 돌보며 사회복귀를 준비하기 위한 물리적인 시간입니다. 이때 필요한 제도는 ‘휴가’입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병가’는 아플 때 쓸 수 있는 대표적인 휴가제도입니다. 이때 병가 기간 동안 급여가 보장되면 유급병가, 급여는 제공하지 않고 휴가만 제공하면 무급병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유급병가는 원래 노동법으로 정의되어야 하지만, 한국은… 예외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 병가는 법적으로 보장되기 보다는 기업/사업장에서 자발적으로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을 통해 ‘기업 복지’의 한 형태로 제공하고 있어요. 주로 큰 규모의 회사에 다니거나, 또는 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 병가를 사용할 수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부분 개인 연차를 사용해야 하거나 때로는 이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아픔을 꾸역꾸역 참으며 일하러 나가야 하지요. 그래서 병가 없는 상병수당은 반쪽짜리라는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병가가 중요한 이유는 시간의 확보 뿐만이 아닙니다. 병가를 사용하는 동안은 계속해서 고용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아파서 일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도 덜어줍니다.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로도 작동한다는 의미입니다. 고용보장을 위해 최소한 건강문제를 이유로 한 해고 금지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 상병수당을 시작합니다

상병수당 제도에 대해 요모조모 살펴볼 내용들이 더 남아 있지만, 오늘 남은 공간에서는 제도 도입을 앞두고 우리가 가진 걱정을 여러분과 나눠보려 합니다. 1-2단계 시범사업을 보면 걱정스러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2년 간 시범을 보인 다섯 개 서로 다른 제도 설계와 그 결과를 평가해서 이 중 가장 적절하다 판단된 모양으로 제도를 도입한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의 걱정이 기우로 그칠 것 같진 않네요. 언제나 그렇듯 상병수당도 ‘닫힌’ 공간에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에 시작될 3단계 시범사업은 최종 모형을 적용할 예정이어서 공론장을 열어두고 실제로 상병수당 제도를 이용할 사람들과 함께 준비하길 바라지만, 이 또한 희망일 뿐일 듯 합니다. 아래 다섯 개 모형 중에 3단계 시범사업은 과연 어떤 모형을 취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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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상병수당, 안심은 이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