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수능도, 진료도, 취업면접도, 모두 질문의 취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같은 말도 어렵게 하는 의료계 사람들은 수가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그 정의와 계산방법만 되풀이하기 바쁩니다. 하지만 일상생활 속 우리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그게 뭐야?"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의료행위의 가격이 아닌 의료서비스의 가치를 추구하려면 무엇을 질문하고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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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심폐소생술의 수가 15만원은 외국의 10분의 1도 안된다"
의과대학 신입생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발표 이후 여러 갈등이 폭발하면서 보건의료계에서 수가와 급여라는 화두가 또다시 불거져 나왔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수가가 지나치게 낮다는 의견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다시 그게 대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수능도, 진료도, 취업면접도, 모두 질문하는 사람의 취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유독 수가에 대해서는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계산되는지, 지금 수가가 논의되는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개념 정의에 대한 답변만 반복하게 된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를 잘 살펴보자. 아마 '왜 저 알쏭달쏭한 말을 계속 반복하나요? 수가는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에 가깝지 않을까.
수가가 너무 낮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사람들도. 정작 그 논박이 왜 중요한 것인지 설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의 수가가 외국에 비해 낮다’는 주장을 다시 들여다본다.
이를테면 병문안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과일바구니, 음료선물세트 같은 먹거리를 챙긴다. 한 손에 잡히는 안정적인 무게감과 적당한 가격대, 다양한 구성으로 요령껏 나눠 먹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과일바구니에 들어 있는 이 사과가 어느 지역에서 수확됐는지, 이 포도가 어느 품종인지, 이 오렌지가 바다 건너온 것인지 따지지 않는다. 알록달록 예쁘게 포장된 바구니에서 기대하는 것은 비타민 섭취와 나눠 먹는 즐거움이다.
그동안 한국의 의료체계는 환자나 의료행위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과도 당도와 모양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듯, 얼마나 응급한 환지인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시술인지, 얼마나 아픈 환자인지에 따라 같은 서비스에도 가격을 다르게 매겨야 한다는 논리이다. 심폐소생술로 예를 들어보자. 심폐소생술 수가 15만원은 성인 환자를 위한 최초 15분 간의 의료행위만을 보상한다. 이 보상금액은 야간일수록, 소아나 노인 환자일수록 더 높게 책정되어 있다. 처치시간이 15분을 초과하거나, 동시에 시행된 다른 검사와 처치는 모두 별도의 보상대상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논리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입장을 대변할 뿐, 서비스를 이용한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은 설명해주지 않는다. 다행히 우리는 한국형 중증도 분류도구(KTAS)를 개발한 연구보고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응급실에 방문한 환자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된 이 분류도구는 환자를 상태에 따라 소생술(Resuscitation), 중증(Emergency), 응급(Urgency), 준응급(Less urgency), 비응급(Nonurgency)의 5단계로 나눈다.
그 중에서도 의식이 없거나, 호흡이 어렵거나, 심정지가 발생하는 등의 이유로 소생을 위한 즉각적인 진료가 필요한 경우는 KTAS 1로 분류한다. 말 그대로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소생시키기 위해 시행하는 처치행위 중 하나가 심폐소생술이다.
8년 전, 2016년 한 해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일산병원 응급실에 방문한 환자들을 살펴보자. 이들 중 도착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이거나, 접수만 하고 귀가한 경우를 제외하면, 응급실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평균 비용은 약 26만원이었다. 하지만 가벼운 타박상, 설사와 변비 등 생명에는 큰 무리가 없는, 중증도가 낮은 환자들은 평균보다 낮은 약 18만 원, 22만 원 수준의 의료비가 발생했다.
반면, KTAS1로 분류된 응급환자들은 응급실에서 '죽었다 살아나'는 데에만 84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럼에도 KTAS1 응급환자 100명 중 15명은 사망에 이르고, 37명은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했으며, 6명은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송되었는데. 자의든 타의든 병원을 벗어나기까지 이뤄진 의료서비스의 총 비용은 평균 767만원 이상이었다.
일산병원을 방문한 응급환자들의 평균 비급여 진료비는 10만원 미만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기관인 일산병원의 의료진은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범위 내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간의료기관, 특히 대형병원에서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첨단의료기기와 최신 의약품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그것을 다시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것이 환자의 생명과 건강권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처럼 기술과 재료의 혁신을 강조하고 수술, 의약품, 의료기기 단위로 건강을 재단하는 방식이 의료전문가와 이익단체의 밥그릇싸움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