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최근 지역 건강 문제를 다루는 많은 말과 글은 주민의 건강문제를 지역 의료자원, 그 중에서도 병원과 연결하고는 합니다. 우리는 이런 방식의 접근으로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충분히 보장하기 어렵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의료자원을 더 두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주민의 건강을 지킬 수 있을까요? 이를 고민하는 건강의 공간적 불평등은 지역의 사회.경제.문화.정치 조건이 어떤지, 그 곳에서 누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살펴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지역의 조건이 어떻게 마련 됐고, 왜 그들이 그 곳에서 삶을 꾸리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합니다. 삶을 꾸리는 요소는 노동이기에, 지역과 주민 건강은 노동과의 긴밀한 연결 속에서 이해되어야 마땅합니다. 오늘 글은 ‘노동의 공간적 분업’ 속에서 사람들의 건강이 어떻게 배치되는지 고민한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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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역’이란 무엇일까. 가장 단순하게는 분리된 지리적 공간을 뜻하겠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다. 고유한 특성을 가진 일개 사례로 다루기에 지역은 보다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관계적인 장소다. ‘노동’은 지역을 보다 넓고,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선 지역은 누군가의 삶의 장소이자, 여러 생산조건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만경강과 동진강 유역에 위치한 호남 곡창지대에서는 오래도록 벼를 생산하고 있다. 1960년대 정부의 계획 경제 아래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생산기술 숙련 노동자들이 터를 잡은 울산은 조선업, 중공업이 집적되어 있다.

강원은 한국 최대규모의 탄광 지역이었다. 지난 7월 1일자 국내 최대 탄광인 태백 장성광업소가 88년 만에 폐광한 이후 현재 그곳에는 단 두 곳의 탄광만 남아있다. 1980년대 이후 대체 자원 개발, 국민 소득 수준 증가 등으로 석탄 수요가 줄어들면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조처는 광업의 쇠락을 가속화했다.

지역은 생산관계가 공간적으로 조직된 결과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역의 입지조건은 산업과 결합한다. 그래서 너른 곡창지대를 끼고 위치한 호남의 특산품은 쌀이고, 항구를 인근에 둔 울산 지역의 특산품은 자동차다. 특히 수출지향 경제정책을 발전시켜온 한국에서는 이러한 ‘입지조건’이 정부 주도 경제성장과 결합해 지역 생산을 주도하는 주요 매커니즘으로 작용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특수성은 그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지, 지역 고유의 내부 속성이 아니다. 강원 광업의 흥망성쇠가 보여주듯이 장소의 생산조건은 생산과정에서 생겨나는 자본과 산업의 요구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노동의 공간적 분업’과 생산조건의 유불리에 따른 지역 간 위계를 만들어낸다.

생산조건이 공간과 결합한 결과, 호남은 쌀을, 울산은 자동차를 생산하듯이, 각 지역은 산업부문별로 특화되어 고유의 생산을 담당한다. 시간이 흘러 생산 과정이 표준화되고 자동화되어 감에 따라 생산조직은 연구개발 또는 금융 기능을 생산 현장으로부터 분리한다. 동시에 기존 생산 과정에서 구축된 지역 산업 특성 위에서 기능별 새로운 입지를 찾아 나선다. ‘두뇌’가 모인 곳에 연구개발, 감독관리, 기획, 금융 기능을, 숙련노동이 있는 곳에 최종 공정 기능을, 더 저렴한 비숙련, 비조직 노동을 구하기 쉬운 곳에 나머지 생산 현장을 두는 식이다.

그 결과, 지역은 특수한 산업구조와 사회적 계급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지역의 생산조건과 특정 시기 지배적 산업 요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축적되면서 지역을 끊임없이 재구조화한다. 한국의 자본은 이 과정에서 심화하는 지역 간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관리나 지식 같은 기능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2022년 기준 전국 100대 기업의 본사 90곳이 수도권에 있으며, 그 중 서울 안에 본사를 둔 곳은 78개다[1].

이번 글은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인 도린 매시의 “노동의 공간적 분업(spatial division of labour)” 개념을 어떻게 건강과 연결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의 일부다.

이번 글은 페미니스트 지리학자인 도린 매시의 “노동의 공간적 분업(spatial division of labour)” 개념을 어떻게 건강과 연결 지을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의 일부다.

산업재해가 말하는 공간적 불평등

이 지역 불평등은 주민의 삶으로 이어진다. 지역별 산업재해는 노동의 공간적 특성을 그대로 포착한다. 노동자 1만 명 가운데 일하다가 다치거나 질병을 얻는 이들이 가장 많은 곳은 강원특별자치도, 가장 적은 곳은 서울특별시다. 2022년 지방관서별 산업재해 만인율을 보면 태백 인구 5.4명일때, 서울청 강남은 0.3명으로 월등히 낮다. 산업재해 사망만인율은 태백 44.2명, 서울강남 0.5명으로 그 차이가 극명하다.

고용노동부 <2022 산업재해현황분석>

고용노동부 <2022 산업재해현황분석>

산업재해의 매우 협소한 인정 범위는 지역 산업재해 불평등 앞에서 우리를 잠시 주춤하게 만든다. 서울 산업재해 고위험업종이 주로 관리, 서비스업에 분포한다면, 부산, 울산, 경남, 전남은 조선업, 강원, 충북, 경북은 벌목업, 충남은 제조업에 분포한다. 광업 관련 산업재해의 대부분은 강원의 몫이다. 후자는 산업재해 입증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반면, 여전히 관리나 서비스업 관련 산업재해는 인정까지 과정이 지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