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8일, 법원은 역사적인 판결을 내놨습니다. 국민건강보험이 국민보건 향상과 사회보장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라면, 단일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이 동성 간 사실혼 관계에 대한 판단을 번복해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한 것은 헌법 상 평등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하다는 것입니다. 동성혼에 대한 오랜 차별의 역사를 딛고, 한국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날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문(동성 동반자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인정 여부가 문제된 사건[2024. 7. 18.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수의견, 별개의견, 보충의견에 걸쳐 피부양자 자격변경에 대한 절차적, 실체적 하자 여부를 다투고 있습니다. 다수의견과 별개의견은 모두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고 보험료를 소급하는 과정에서 사전통지나 의견제출 등 행정절차를 따르지 않았으므로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이 피부양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자격을 전환한 것이 자의적이고 의도적인 차별행위인지에 대한 의견은 나뉘고 있습니다. 먼저 다수의견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평등원칙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사실혼 관계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이라면,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는 헌법상 위반이며 위법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별개의견은 법해석에 따라 피부양자 기준을 판단해 지역가입자로 전환했다면 기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법해석’이란 국민건강보험법과 민법에서 규정하는 ‘배우자’와 ‘혼인’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의미합니다. ‘동성 동반자가 법률 상 또는 사실상 배우자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집단에 속하는가’에 따라서 부양의무를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수의견은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성 동반자’가 사회보장제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상황은 곧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자유, 법 앞에 평등할 권리를 침해하는 중대한 차별이라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판결문에서도 건강보험의 도입 이래 지속적인 소송과 인권위 제소, 법개정을 통해 확대되어 온 피부양자 범위에 주목합니다.

건강보험(당시 의료보험)은 1977년부터 1989년까지 직장근로자, 도시자영업자, 농림어업 종사자 등 근로유형에 따른 조합을 설립하고 가입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확대되어 왔습니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가입자격을 얻는 범위는 배우자와 ‘직계존속’ 혹은 ‘직계비속’으로, 혼인과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규정됩니다. 당시만해도 부모 봉양과 같은 전통적 규범이 강했기 때문에 1981년에는 여성 근로자의 시부모나 남성 근로자의 장인장모처럼 배우자의 부모를 피부양자로 인정하게됩니다. 또한 형제자매에 대한 인정범위도 조금씩 확장해왔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이혼이 증가하면서 이혼 여부, 이혼사유, 이혼이 아닌 사별 등으로 형제자매를 ‘부양해야 할 미혼의 가족’의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은 차별적이므로 인정기준을 개정하라는 인권위의 권고가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부양의 범위는 혈연과 혼인 관계로만 단순하게 정의되지 않고 사회적 요구와 유연해지는 가족의 형태를 반영해왔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피부양자 자격 인정기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피부양자 자격 인정기준.

피부양자 인정기준에 따른 건강보험공단의 재량적 판단을 강조한 별개의견 역시 피부양자 인정범위의 변천을 언급합니다. 이번엔 과거의 범위 확대 추세와 달라진 최근 여러 국가의 피부양자 축소나 폐지가 근거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피부양자 범위는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에 비해 넓은 편이고, 2024년 현재 전체 건강보험가입자의 약 31.9%에 해당하는 1,638만 여명이 피부양자 자격으로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유사한 취지에서 한국에서도 2017년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된 이후 2022년까지 건강보험부과체계 개편이 진행됐습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보다 지출할 수 있는 소득을 중심으로 자격기준을 강화하고 건강보험료의 부담을 높였습니다.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변화는 일각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연금도 공적 이전’소득’으로 인정되면서 연금수령액에 따라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 당했기 때문입니다(관련 기사). 노후에는 가족관계 안에서 자녀의 봉양을 받는게 당연했던 과거와 달리, 개인의 노후대비책과 그에 따른 경제적 능력이 중요해진 것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피부양자 인정기준 점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피부양자 인정기준 점검

이처럼 건강보험 피부양자제도는 사회안전망이 부족하던 시절부터 혈연과 혼인으로 이어진 돌봄 공동체의 범위를 고민한 흔적이 묻어 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한국에는 생계 유지와 부양 의무를 공유하는 생활공동체로서 ‘배우자’는 커녕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겠다는 사람들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드디어 반등하기 시작했다는 조혼인율은 인구 1천 명 당 3.8건으로, 10년 전인 2013년 6.4건의 절반 수준입니다. 최근 설문조사일수록 20대와 30대의 연애 유경험자 비율은 절반 이하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더라도 제도적 수혜를 누리기 위해 혼인신고는 미루는 경우도 늘어나는 모양입니다(관련 기사: “혼인신고한 게 죄?”…결혼 페널티에 두 번 운다 [인구정책, ‘가시규제’가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