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로 전국 각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전공의가 의과대학 정원 증원에 반발하며 의료 현장을 이탈한 지 6개월이 된다. 불안한 환자, 수습을 도모하는 정부,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선 의사단체, 6개월간 같은 풍경이 반복됐으나 수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 시민의 고통은 깊어만 간다. ’어떤 의사를, 어떻게’ 늘려야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지 묻는 대신, 증원이 한국 의료의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는, 또 반대로 박살 낼 것이라는 주장들만 공론장을 채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겪은 ‘대란’은 도대체 무엇이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HSC는 사태 6개월을 기록하고, 대안을 찾는다.

<aside> 📌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1)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들

(2)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3) 의료체계에 던지는 질문들

(4) 노동에 던지는 질문들

(5) 의사에 던지는 질문들

(6) 7개월, 질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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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대란의 기록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선언 전후로 의료 대란의 경과를 간략하게 정리했다.

2024년 2월 이전 정부는 2022년 말부터 ‘의대 정원 증원’을 꾸준히 시사해 왔다. ‘지역, 필수의료 강화’가 그 목적이었다. 2023년 내내 증원을 모색하던 보건복지부는 2023년 10월 26일 ‘2025학년도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 을 발표했다. 증원 규모를 두고 ‘의료현안협의체’라는, 시민들을 배제한 방식의 협상이 길게 이어졌지만 의사와 정부는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2024년 2월 6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 이후 27년 만이었다. 의약분업 당시 정부가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감원에 합의한 뒤 2006년부터 한국의 의과대학 정원은 쭉 3,058명으로 유지돼 왔다. 정부는 6일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발표하는 한편 늘린 인원을 비수도권 의과대학에 집중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의사를 대표해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여해 왔던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발표했다.

2024년 2월 19일 일명 ‘빅5’라고 불리는 서울 대형병원을 시작으로 전공의가 일제히 사직서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연합뉴스’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회는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단과 논의를 진행,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데 합의했다고 한다. ‘사직’ 러시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모든 수련병원으로 번졌다. 보건복지부는 비상진료대책상황실 운영을 시작하고, 업무복귀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정부의 명령은 전공의 복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2024년 3월 4일 정부는 전공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의과대학 정원 배정 과정을 멈추지 않았다. 교육부는 2월 22일 전국 40개 의과대학에 3월 4일까지 정원 배정을 신청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로 인해 갈등은 한층 격화됐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장 등으로 구성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의사협회는 일제히 반발하며 각 대학과 정부에 신청 자제와 연기를 요청했다.

2024년 3월 11일 정부는 이 시기부터 지역에서 일하는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을 차출,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상급종합병원은 가장 난이도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절반가량인 23곳이 수도권에, 그 중에서도 14곳은 서울에 위치한다. 보건소 필수업무 공백을 우려한 각 지역의 반발이 있었지만 산발적인 항의에 그쳤고, 정부는 지역에서 겪을 ‘의료 공백’과 관련해서는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주민들, 특히 병의원이 없는 지역의 주민들은 이용하던 의료서비스를 하루아침에 받지 못하게 됐다.

2024년 3월 26일 의사협회의 신임 회장으로 임현택이 선출됐다. 임 신임 회장은 정부와의 의대 정원 증원 협상에 있어 대표적인 ‘강경파’로 불려 왔다. 이를 반영하듯 신임 회장의 취임 일성은 ‘면허정지가 내려지면 총파업하겠다’는 것이었다. 주요 고비마다 내분을 겪던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의협 비대위), 전공의 단체, 각 시도의사회 등 의사 단체들은 강경파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의료계 ‘단일안’구축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2024년 4월 10일 제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원내 과반인 151석을 넘겨 175석을 차지했고, 낮은 대통령 지지율을 반영하듯 여당은 100석을 겨우 넘겼다.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21대 국회에서 2명 뿐이었던 의사면허 보유 의원은 22대 국회에서 8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의사와 정부’간의 갈등관계에 국한된 논의임을 뒷받침하듯 의사면허를 보유하지 않은 타 보건의료 직군 선출자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의사가 아닌 보건의료 직군 국회의원 당선자는 21대 국회에서는 7명이었으나 22대 국회에서는 4명으로 주저앉았다. 더욱이 야당이 압승을 거두고, 정책을 끌고 나가는 동력이던 선거마저 끝나면서 갈등을 끝낼 정치적 힘은 소실됐다. 이때부터 교착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2024년 4월 15일 총선이 끝나자 정부는 다시 의료계에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통일된 대안’을 요구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완고하게 의대 정원 증원 취소를 요구했다. 의협 비대위를 포함한 다양한 의사 단체들은 ‘의대증원 원점 재논의’가 의료계의 통일된 입장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전공의 이탈 사태 초기 한국사회에 충격을 줬던, 의료계의 ‘집단 폭력’ 문화가 재차 나타났고, 집단행동에 찬성하는 일부 의과대학 커뮤니티에서 복귀 전공의와 의대생에 대한 리스트, 조롱하는 글이 올라왔다. 오로지 ‘대화 없는 비타협’을 고수하는 의사집단의 한 단면이었다.

2024년 7월 8일 5개월여의 기간 동안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고, 응급실을 중심으로 환자 수용 문제도 심각해지자 정부는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 카드를 꺼내들며 전공의 복귀를 시도했다. 정부는 이어서 전공의 추가 모집, 9월 수련 등 당초 고려하지 않았던 다양한 대안도 전공의 복귀를 위한 방안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추가 모집 지원자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전공의 복귀는 수포로 돌아갔다.

2024년 8월 16일 전공의 이탈 6개월째를 앞두고 국회에서는 보건복지위원회와 교육위원회 주관으로 '의과대학 증원에 따른 의대교육 점검 연석 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조차 논의의 중심은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미와 지향, 수습에 대한 논의보다는 의대 정원 증원의 근거자료를 요구하는 의료계와, 정책은 적절했다고 주장하는 정부 간의 공방에 맞춰졌다. 더욱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형식적인 노력마저 포기한 정부는 누가 참여하는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전문의 중심 병원’, ‘4차 병원’ 같은 전문가들의 취향을 반영한 거창한 대안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논의의 경과와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주민들에게 공유하려는 시도, 제안된 정책 대안에 대한 너른 논의를 해보려는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