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 설명회 풍경

2024-2025 절기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기간이다. 예방접종 사업은 인플루엔자처럼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을 ‘관리’하는 가장 ‘비용효과적’인 접근 가운데 하나다. 거기에 예방접종률이라는 숫자로 그 성과가 드러난다는 점 역시 ‘관리’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 시기가 오면 지자체마다 앞다투어 무료접종 대상자인 65세 노인 예방접종률 높이기에 온 정성을 쏟기 시작한다.

절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은 담당자들의 결의와 함께 시작된다. 담당자가 한 자리에 모여 사업의 필요성부터, 대상자의 규모, 백신 관리 절차, 등록 방법까지 많은 내용을 톺는다. 모든 꼭지마다 ‘예방접종률을 높여야 한다’는 당부가 따른다. 우리 열심히 해서 예방접종률을 높여서 이번에야 말로 꼴지를 벗어나자던가, 또는 이번에는 1등을 하자던가. 그렇게 열의를 다지며 다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나면, 사업 설명회가 마무리된다.

2024-2025절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지원사업 포스터. 사업 대상자인 어린이, 임신부, 65세 이상 어르신 대상으로는 제작되어 있지만, 또 주요 대상자인 ‘취약계층’ 대상 사업 안내 포스터는 별도 제작되어 있지 않다.

2024-2025절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지원사업 포스터. 사업 대상자인 어린이, 임신부, 65세 이상 어르신 대상으로는 제작되어 있지만, 또 주요 대상자인 ‘취약계층’ 대상 사업 안내 포스터는 별도 제작되어 있지 않다.

예방접종 관리의 의미

인플루엔자 위험이 높은 노인은 예방접종 사업의 ‘요주의’ 대상이다. 똑같이 인플루엔자에 걸려도 사망할 위험이 높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접종 과정에서 일어날지 모를 예상 밖의 행동 때문이다. 예방접종 등록 관리 시스템 사용법을 함께 익힐 때면 등장하는 레퍼토리. “지난 절기에 하루 n번 중복접종을 받은 어르신이 계세요. 예방접종 등록 관리 잘 해야 합니다.” 가벼운 농담투의 이 말은 사실 그저 ‘농담’으로 지나갈 말이 아니다. 주민들이 예방접종을 ‘중복’으로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이 가열찬 예방접종 사업은 그 이유를 깡그리 무시해버리기 때문이다. ‘질 병이 이길 병이 된다’는 무수한 홍보 아래, “많이 맞으면 더 잘 예방되는 줄 알았다”고 생각해버린 노인, 과연 예방접종 사업은 이런 주민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을까.

예방접종 사업 담당자들은 경쟁적 성과 압박에 보건소 담당자들은 눈코들 새도 없다. 문의 전화에 응대하는 일부터 예방접종 현황 실시간 모니터링까지, 담당자는 말 그대로 사업을 온전히 담당해야 한다. 아래 예방접종 지원사업의 추진 체계와 기관별 역할을 보고 있자면 한국의 여느 국가 사업과 마찬가지로, 이 많은 일을 ‘해내는’ 한 두명의 담당자가 기적같이 느껴진다. 본격 절기 예방접종 사업 돌입 전, 보건소 관할 지역의 목표 예방접종률을 설정하는 일부터 난관이다. 지난 절기 예방접종률을 확인하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만, 구군별, 성별, 연령별 정도로 집계된 통계로 어디 사는 누가 왜 접종을 맞지 않았는지 파악하기란 현재로썬 불가능에 가깝다. 위탁의료기관을 관리하고, 구매한 백신을 나누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일 사이에는 백신 조달 업체를 관리하는 일이 끼어 있다. 방식에 따라 보건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납품하는 경우 백신을 제대로 잘 조달하고 회수하는지 확인하고, 이 모든 업무와 동시에 혹시나 판단이 쉽지 않거나 또는 위중한 이상반응이 생길까 살피느라 온 신경이 곤두선다. 보건소 업무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도입한 민간위탁 전달 방식이 되려 업무에 부하를 걸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든다. 예방접종을 독려하고 홍보 방안을 고안하는 일도 뺄 수 없다. 잘 짜여진 관료제에서 이 모든 일은 계획부터 결과까지 모든 절차와 내용을 공문서 양식에 맞춰 작성하고 상부의 결재를 받아야 실적으로 인정된다. ‘예방접종률 제고,’ 한국의 국가적 목표 앞에서 ‘중복등록’은 어쩌면 이런 수많은 ‘일사불란함’의 결과다. 그러나 그저 ‘중복 접종을 조심하자’는 표어 앞에, 이 과중한 업무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문제가 된다.

누군가는 정말 여러 번 접종을 받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아무도 묻지 않는다. 인플루엔자 감염 이후 병원에 데려가고 돌봐 줄 사람도, 진료비나 약값을 지불 할 비용도, 가까이 갈 수 있는 병원도 없어서, ‘예방’이 유일한 자원이라 더욱 중요한 사람들이 있다. 아파서 쉬자니 당장 일이 끊길 위험이 있다거나, 또는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어 아픈 몸과 동료들에게 전파할까봐 미안한 마음으로 겨우겨우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운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또는 이미 접종을 했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우편물과 문자가 날아오니, 긴가민가 하면서 또 다시 맞았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많이 맞을수록 효과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하고 판단했을 지도. 숱한 이유가 있겠지만, 국가와 사회는 이들을 그저 예산을 낭비하는 부도덕한 의료쇼퍼 쯤으로 치부하는 듯하다.

2024-2025절기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의 추진 체계와 기관별 역할(출처: 질병관리청). 어린이, 임신부의 위탁의료기관 중 의원급 소아청소년과 경우 민간개별구매 방식을 따라야 해 관리 방식이 다르다.

2024-2025절기 인플루엔자 국가예방접종 지원사업의 추진 체계와 기관별 역할(출처: 질병관리청). 어린이, 임신부의 위탁의료기관 중 의원급 소아청소년과 경우 민간개별구매 방식을 따라야 해 관리 방식이 다르다.

예방접종 본질 되찾기

백신의 역할은 바이러스 감염과 전파를 예방하는 데서 그칠지 몰라도, 사람들이 백신을 접종하는 행위가 갖는 의미는 그 이상이다. 예방접종 말고는 마땅히 건강을 관리할 자원이 없는 사람이 언제나 존재하고, 그 존재의 정도와 규모는 지역별로 다 다르다. 백신접종을 위한 정부의 고민은 한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줄세우기에 자원을 소모하기 보다는 백신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주목할 때다.

이미 담당자들은 그 많은 일을 해 내면서, 동시에 한정된 자원을 두고 치열한 작전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일들은 국가통계의 어느 지점에 반영될 수 있을까? 배제된 사람들, 예컨대 노인들과 함께 복지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 타법의료급여 수급권자라 무료 예방접종 사업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사람을 생각하며 애쓰는 일. 매일 현장에서 이어지는 뜨거운 고민이지만 숫자의 높고 낮음은 이 마음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그래서 참 이상한 일이다. ‘예방접종률의 높고 낮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공로를 치하해야 하나. 마음을 다해 일하는 보건의료노동자에게, 엉터리 통계 분석처럼 변수를 추가하고 빼며 ‘이번에는 접종률이 높으니 잘 했다’고 격려받는 일은 어쩌면 모욕에 가깝다.

한국의 무료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은 이미 ‘성공적’이다. 집단 면역을 위해 세계보건기구가 세운 목표 예방접종률을 훌쩍 넘은지도 오래다. 건강정책이 늘 지향해야 한다는 비례적 보편주의(proportionate universalism) 전략의 모양새도 갖췄다. 접종하지 않은 사람을 발굴할 수 있는 통합적인 정부 관리 등록 시스템도 이미 마련되어 있다. 행정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민관협력의 꼴까지 갖추었으니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국가적 성공’으로 가는 길에 ‘사람’만 없다. 이제는 예방접종‘률’이 아니라, 사람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예방접종’에 더 신경 쓰면 안 될까. 예방접종 사업이 예방접종률 1등이 아니라, 그 본질을 찾을 때까지 우리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