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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면 매년 경증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는 환자에 대한 성토가 이어집니다. ‘수액’을 맞으러, ‘MRI’를 찍으러 응급실을 찾는, 응급실로 부모님을 모셔오는 ‘효자’들. 이러한 ‘진상’들은 어떤 맥락에서 탄생했고, 도대체 왜 응급실을 과부하로 만들고 있는 것인지를 다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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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면 응급실은 매번 곤욕을 치른다. 장거리 귀성길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환자도 걱정이지만 평일 운영하는 여러 병원이 일제히 문을 닫으며 감기 환자까지 응급실을 찾는다.

2025년 설 연휴 기간에는 더 큰 우려가 나왔다. 전공의들의 집단적인 의료 현장 이탈 이후 ‘의료 대란’이 1년을 맞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일찌감치 2024년~2025년 사이 동절기 의료 대책을 추진해 왔으나, 위기 상황 속에서 ‘응급실 과부하’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자료=보건복지부. https://blog.naver.com/mohw2016/223737099155

◇자료=보건복지부. https://blog.naver.com/mohw2016/223737099155

얼핏 보기에는 병원에 붙어 있는 인프라 중 하나로 보이지만, 응급실의 맥락은 의료를 넘어선다. 지역사회 주민들이 맞닥뜨리는 건강문제를 가장 먼저 감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 때문에 지역사회 위급상황에서 일차적인 보루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진상’ 역시 이와 같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이다. “수액을 놔 달라,” “편찮아 보이시니 MRI를 찍게 해 달라”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를 요구는 기본,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자아성찰형 질문은 덤. 알려진 대로라면 이 ‘대단하신 효자’들이란 가정 내에서 돌봄 분담조차 하지 않는 ‘그 젠더’권력의 소유자들이고, 어떤 면에서도 그들의 행태를 곱게 봐 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국 의료가 놓인 맥락 역시 이러한 ‘진상짓’을 부추기고 있었다면 어떨까.

‘진상’을 만드는 맥락에서 수도권중심주의가 빠질 수 없다. 한국은 전체 인구의 50.69%가 수도권에 모여 사는 나라다(☞관련기사 : 수도권 인구, 비수도권보다 70만명 더 많다…역대 최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국가적, 추격적 산업 발전, 다른 말로는 ‘서울집중화’ 의 결과다. 이미 조사 결과(☞관련자료 : 국토연구원(2022) https://www.krihs.re.kr/board.es?mid=a10607000000&bid=0008&act=view&list_no=384718), 그리고 공간정치를 다룬 문헌에서 뒷받침하듯, 노동인구가 밀집해 있는 젊은 층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나고, 지역은 고도성장기 유치한 산업구조의 변화 속에서 살길을 고심하고 있다.

지역은 가파르게 고령화된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발표한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르면 전남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7.2%로 가장 높았고, 경북(26.0%)에 이어 강원(25.3%) 순이었다. 고향에 홀로 남은 고령층, 그리고 고향을 떠난 자식, 더욱이 고령층의 건강을 돌볼 자원이라곤 거의 없는 지역 사정, 이 세 가지가 합쳐진 뒤 ‘명절’이라는 이름 아래 만남을 가지게 된 결과로 ‘응급실 진상’이 출현한다. 애초에 고령층이 자신의 건강에 대해 잘 알고, 지역 내에서 건강상의 도움을 받을 자원이 잘 연계되는 상황이라면, 그리고 여기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있었다면 이와 같은 ‘진상의 습격’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명절이면 환자를 탓하고, 성토하는 의견과는 달리, 이 사태는 의사들 스스로가 만들기도 한다. 도심 지역의 병원 밀집 단지에 가면 뜬금없는 ‘메뉴판’이 등장한다. 병원인데, 카페다. 비급여로 정맥주사 수액을, 마치 건강 회복의 만병통치 음료처럼 선전해 파는 일선 의원의 행태를 이르는 말이다. ‘증상별 맞춤’이라며 감기몸살에서 비타민 D까지 섞어 판매하니, 잘 모르는 환자 입장에서는 수액이 ‘효과 있는 치료’라는 이미지가 쌓인다. 도시 사람들은 오랜만에 방문한 고향에서 기력 없이 늙어 있는 가족을 오랜만에 들여다보고는, 익숙하게 소비하던 “수액”이라도 한 번 맞춰야겠다며 환자를 부축해 응급실을 찾게 된다. 환자가 원한다면 돈을 받고 서비스를 내 주는 한국 의료에 대한 축적된 경험이 그 선택 뒤에 놓여있다.

각종 검사는 또 어떤가? 환자의 필요와 근거, 그리고 추적관찰 가능한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진행하는, 한국과 일본 이외에는 전세계 유례없는 건강검진제도를 국가가 도입하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검진기관의 수익을 위해 검사를 '남용'하기까지는 의사들의 독점적 지식을 이용한 과학적 정당화가 있었다 (☞관련자료 : 시민건강연구소(2015) http://health.re.kr/?p=2510). 그러니 연휴 기간 응급실로 뛰어들어와 검사를 요구하는 환자는 ‘진상’이라는 비난 앞에 억울하다. 그동안 건강을 돌봐줄 의사와 꾸준히 만나며 신뢰를 형성하기도 이전에 대대적으로 ‘조기검진’ 홍보에 노출됐던 경험, 그리고 병원만 방문하면 문진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각종 ‘검사’를 해보자고 요구받았던 경험은 어디로 가고, ‘진상’이라는 비난만 남았냐는 것이다(☞관련자료 : 김명희(2019)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095).

이토록 첨예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역 대형 병원 응급실로 찾아오는 ‘진상’ 뒤에 의사들의 책임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진상’을 성토하는 말과 글 속에서 자신의 책임은 누락되고, 겹쳐진 곤궁함 속에서 병원을 찾는 환자는 쉬이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

◇한 개인 의원에 수액 치료의 효능을 선전하는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HSC

◇한 개인 의원에 수액 치료의 효능을 선전하는 안내가 붙어 있다. 사진=HSC

매해 명절을 앞두는 시기면, 의사들 사이에서는 ‘명절 진상’ 환자가 두렵다며 앓는 말이 나온다. 물론 노동하는 입장에서의 고충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토록 복잡한 정치적 맥락, 그리고 의사들 스스로의 책임을 내버려둔 채 ‘진상 성토’만 반복해 봐야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대란’이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자는 드디어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사람들의 건강, 돌봄, 포괄적인 의료에 관한 논의는 의사들의 집단적인 반발 속에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이쯤 하면 사실 ‘진상’이 누구인지도 명확지는 않다.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