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마음챙김이 우리를 구원할까. 건강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건강이 의료의 범위를 넘어 사회적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해 왔다. 동시에 몸에서부터 마음과 사회까지, 건강의 영역도 함께 넓어졌다. 건강이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말하는 ‘심리사회적 경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여러 방면에서 그 쓸모를 입증해 왔다. 그런데 동상이몽인 자들이 있다. 이들은 사회를 소거하고 심리, 그 중에서도 스트레스만 편취해 “모든 것이 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말한다. 이때 우리가 살아가는 불안정한 조건은 허상이 된다. 사람들의 삶과 분리된 ‘스트레스’는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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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몸에 대한 것일까? 아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단순히 신체적 질병과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도, 사회적으로도 잘 지내야 건강하다고 말해왔다.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건강이 얼마나 사회적인지 입증하기 위해 애쓰고, 사람들이 의료로 다 채울 수 없는 사회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도록 노력해 온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건강을 사회로 확장해 나간 끝에는 마음과 사회를 같이 생각해야 건강할 수 있다는 지식도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심리사회적 경로’라고 부른다.
도대체 뭘 할 생각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운 정부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은 이름처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우울과 불안 등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2025년 올해도 이 사업은 살아남았다. 사업을 둘러싼 각종 논란을 잠시 미뤄두고 나면,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국민의 마음건강을 돌보겠다는 이전에는 없었던 야심찬 계획은 꽤나 고무적이다.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 안내 리플릿(2024년)
2010년 일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사업이 도입된 바 있다. <근로자지원프로그램(Employee Assistance Program, EAP)>이라고 부르는 이 사업은 스스로를 “근로자의 업무수행 및 개인 생활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등 업무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여 효율적 업무수행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상담‧심리서비스”로 소개하며 올해로 벌써 17년 째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정책을 왜 하게 됐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섞여있겠지만 그 중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라고 불리는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목표도 있다. 대기업 노동자는 회사가 개별적으로 제공하는 지원프로그램을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프로그램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이 제도를 통해 300인 미만 중소기업과 소속 노동자들 마음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일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들에게 일터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어려움은 실존의 문제로 이어진다. 상사와의 갈등,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용계약, 임금 동결, 일상적인 젠더차별 등, 일터에는 아프지 않을 이유가 더 적다. 그렇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 매일같이 아픈 몸과 괴로운 마음에 대해 애써 말하고, 같이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일종의 진보 과정이다.
하지만 스트레스 관리에 더 진심인 이들이 있다. 노동하는 사람을 고용한 회사의 경영진들 되시겠다. 다만 이들의 관심은 염불보다 잿밥에 있다. 직원의 건강보다는 건강한 직원에,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상황보다는 스트레스 자체에 관심을 두고 직원이 겪는 모든 문제를 스트레스의 문제로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직무 스트레스의 문제가 되면 직원에 대한 통제도 한결 쉬워진다. 노동생산성을 낮추는 스트레스를 조직의 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회사는 직무 성과 관리의 일환으로 직무 스트레스를 조사하고, 관리 대상 직원을 일별해 심리상담을 지원하면 회사의 책임은 끝난다.
직원의 마음을 돌보는 지원은 직원뿐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생색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흉내도 낼 생각이 없는 고용주들이 더 많은 상황에서 스트레스 관리를 지원하는 회사면 충분할까? 일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훌륭하고 자비로운 고용주라고 평가해 주기엔, 이들의 전략은 노동자에게도, 사회에도 해롭다.
마음돌봄 안에서 모든 문제는 직무 스트레스가 되고, 노동자를 둘러싼 모든 관계와 구조적 문제는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문제를 개인의 마음 문제로 바꾸고, 진짜 원인인 노동자와 사업주의 관계를 지우는데 성공한 결과, 회사의 잘못과 책임도 녹아 사라진다. 직무 스트레스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정부에게도 회사에게도 직무 스트레스는 개인이 마음을 잘 돌보아 스스로 ‘다스려야 할’ 무엇일 뿐인 셈이다.
<직무 스트레스 다스리는 10가지 습관> - 2019년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마음을 다루는 방식도 유행을 타지만, 최근에는 그 중에서도 ”마음챙김(마인드풀니스, mindfulness)”이 각광받는 모양새다. 마음챙김은 불교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현대심리학이 적극적으로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활용하고 있다. 회사에서 마음챙김이 활용되는 방식이 노동자의 외부 환경을 제쳐놓고 마음 속으로 침잠하게 하는 명상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하는 이들이 고통을 말하는 대신, 개인의 마음과 영혼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누군가의 불순한 의도를 드러낸다. “모든 것이 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말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불안정한 조건은 허상이 된다. 그 결과 연대하는 노동자는 사라지고, 오로지 ‘자기-성장’한 개인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