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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비상! 트럼프가 돌아왔다! 과학계 절망의 구덩이로 뛰어들다!"
하지만 잠깐, 정말 그럴까요? 트럼프의 재집권과 함께 미국 과학계에 불어닥친 칼바람은 단순한 정치적 변덕이 아닌, 오랫동안 쌓여온 구조적 문제의 폭발점일지도 모릅니다. 국립보건원 예산이 줄줄 새는 지금, 그동안 편안한 정부 보조금 위에서 '나는 특별해'를 외치던 전문가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네요.
이 글은 갑자기 '불공정'을 외치는 과학자들의 이면을 파헤치는 여행으로, 보조금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특권층의 속내를 들여다봅니다. 비정규직은 해고하면서 자신의 지위는 사수하려는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는 한국 의사들의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르겠어요. 이 모든 것이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일까요? 아니면 우리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교훈일까요?
당신이 정의로운 분노를 느끼든, 아니면 "드디어 누가 말해주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든, 이 글은 우리가 '전문가'라는 집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계기를 제공합니다. 자, 지금부터 특권층의 위기 속으로 함께 뛰어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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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뒤로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로 인해 미국 과학계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새 행정부의 감세기조와 함께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은 엄청난 수준의 예산삭감을 발표했다. 연구중심대학 및 병원 매출의 30% 가량을 차지하는 연구용역비를 국립보건원이 하루아침에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어서 직원들이 대량으로 해고되면서 국립보건원은 기본적인 행정마저 마비된 상태이다.
이에 대응하여 민주당 성향의 22개 주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다행스럽게도 판사가 연구비를 기존 계약대로 지급할 것을 명령하는 가처분을 내렸으나 행정부는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고 있다. 의학연구가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텍사스나 오하이오처럼 공화당 성향의 주들은 소송에 참가하지 않아 가처분 대상에 해당조차 되지 않는다. 이에 많은 과학자들이 트럼프의 정부효율부가 미국 의과학의 미래를 짓밟고 있다며 강하게 항의하는 중이다.
갑작스러워 보이는 이러한 변화들은 사실 예고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발간한 프로젝트 2025는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할 경우 중점적으로 시행할 정책을 정리한 책이다(☞관련자료: Project 2025 - Presidential Transition Project). 프로젝트 2025는 과학기술연구에서 정부의 역할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들이 연구비의 너무 큰 부분을 간접비로 ‘빼돌리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관련기사: 트럼프 행정부, 생의학 연구자금 수십억 달러 삭감).
여기에 더해 트럼프 당선 이전부터 보건복지부(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장관으로 내정되었던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유명한 백신 음모론자다. 그는 오랜 기간 백신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유포해 왔으며, 코로나19 유행 시기에는 빌 게이츠와 앤서니 파우치가 코로나 백신으로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주장을 포함한 여러 음모론을 확산시켰다. 2021년에는 FDA에 현재 승인된 백신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코로나 백신에 대한 승인 철회를 청원하기도 했다. 청문회를 통과하고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그는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 MAHA)를 구호로 내세우며 정부효율부의 국립보건원 개혁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당연시해왔다. 미국이 연구하기 좋은 나라라는 인식 역시 연방정부가 의과학 연구에만 연간 약 7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온 결과물이다. 오랜 기간 우호적인 환경에 익숙해진 과학자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유의미한 반성조차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위와 권력을 가진 과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집중하는 동안,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비정규직 해고와 신규 채용 축소로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이러한 대응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과학이 팽창해온 과정을 반영한다. 미국의 의과학 연구는 1970년대에 중노년층 인구가 증가하고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급속히 확대되었다. 국립보건원은 화폐 가치 변화를 보정한 후에도 2000년에는 1970년대 대비 3배 이상의 예산을 집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팽창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쟁취했다기보다 사회적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큰 노력 없이 얻은 지원에 고무된 연구자들 사이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게재료를 요구하는 상업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을 실적평가의 기준으로 삼아 세금을 낭비했으며, 이러한 관행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와해시키기까지 했다.
[출처. Kwame Boadi (2014). https://www.americanprogress.org/article/erosion-of-funding-for-the-national-institutes-of-health-threatens-u-s-leadership-in-biomedical-research/](https://lh7-rt.googleusercontent.com/docsz/AD_4nXegC2qYvqcWkPh8F9kdMuiwAZOUd-d1ibvG4bAw7fut-hm3uWhFFHoLm9jTDalJ1gR0lgSaJtzc7YauQDIgNTiKNOY7KzxiuLAa34SLA5qG6Qp-9365mElLEsrRtTJSsy-_rBtQDQ?key=ELKFAt3xa791NQnPSUFrtG90)
출처. Kwame Boadi (2014). https://www.americanprogress.org/article/erosion-of-funding-for-the-national-institutes-of-health-threatens-u-s-leadership-in-biomedical-research/
연구비 수주가 기관의 매출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대학과 병원들은 연구비 수주를 목적으로 하는 비정규 연구직을 대량으로 양산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하버드 대학이 있다.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1만 명이 넘는 교원 중 정규직 교원은 15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의과학 연구와 고용의 유연화를 이윤 창출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 연구기관의 모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예산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만 지속가능한 이러한 모델은 2000년대 이후 예산 규모가 정체되면서 여러 어려움을 마주하게 되었지만, 대학과 병원은 기존의 수익모델을 고수해 왔다.
하지만, 이런 관성은 누구의 탓일까? 미국 연구기관에서 연구자들의 높은 자율성을 고려하면, 이런 의사결정은 전적으로 연구자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예산이 대폭 삭감됐을 때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 역시, 호시절에 기관의 규모를 키워오던 방식에서 테이프만 거꾸로 돌리는 것에 불과하다. 기관 운영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거나 고용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의 접근은, 애초에 고려사항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가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한 과학자들의 반응이다. 꾸준히 변화를 주장해온 소수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기존의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얘기가 목소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립보건원이 지출한 1달러가 3달러에 상응하는 경제적 가치가 있다거나(☞관련자료: 미국 경제를 지속하는 국립보건원의 역할), 2010년 이후 승인된 신약의 95% 이상이 국립보건원이 지원한 연구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이다(☞관련자료: NIH 지원이 2010-2016년 신약 승인에 미친 기여). 타당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결국 우리의 활동은 누가 뭐래도 매우 가치가 있으니 하던 그대로 우리를 지원하란 입장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의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듯하다. 상원 청문회에 후보자로 참석했던 로버트 케네디는 이 글에서 앞서 언급한 과학계의 여러 비효율을 효과적으로 부풀려 행정부의 국립보건원 개혁이 옳다는 자신의 주장을 전국 미디어에 설파했다. 특권적 위치와 대우에 젖어 있는 과학자들의 내부 개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케네디의 주장을 학습한 보수주의자들을 과학자들이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사례는 많은 전문가들이 스스로의 탁월함을 자부하면서도 실제로는 정부 보조금과 세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깊이 성찰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동안 누려온 특권이 갑작스럽게 제한될 때 사회를 향해 과도한 비난을 쏟아낸다. 한국 사회의 미국에 대한 맹목적 선망을 고려할 때, 한국 전문가 집단이 보이는 열화된 복제판 같은 행태는 미국 전문가들의 태도를 통해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들이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을 위한 역학 People's Epidemiology’이라는 구호 아래 코로나19 시기에 활동한 연구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구비가 없어도 사람들의 실질적 필요에 맞춰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Prep the People>(☞홈페이지 바로가기)은 상업적 이해관계나 정부 지원 없이도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양질의 정보를 제공했다. 이런 사례는 전문가 집단이 자신의 특권에 안주하는 대신, 사회적 필요에 직접 부응하는 지식 생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며 수개월이면 대학병원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나고, 급기야 한국 의료가 파멸하고 말 것이라고 외치던 의사들을 기억할 것이다. 세상이 오로지 자신들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이들, 그저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뜨고 싶은 이들이 전문가를 참칭하는 황당한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진정한 대안은 사람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는 데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