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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의료는 생명을 구한다"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사실 절반만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의료는 실제로 우리의 생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요? 이 시리즈는 사람들의 건강과 의료의 관계를 탐구합니다. 의사 파업 시 감소하는 사망률, 고비용 저효율의 미국 의료, 정체된 영국 NHS의 성과, 급격히 향상된 한국의 기대수명을 사례로 건강과 의료가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를 살펴봅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기술로 의료를 새롭게 이해해보자고 제안해 보려 합니다. 이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번째 글에서는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의료인 파업의 영향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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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파업해도 왜 사망자는 늘지 않을까

전공의들이 병원을 뛰쳐나가고, 의대생들이 학교를 떠난 지 꼬박 1년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의료가 붕괴할 것이라 걱정했고, 응급실 뺑뺑이로 고통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언론 지면을 수놓았다. 동시에 사람들은 당연히 그로 인해 죽는 사람이 크게 늘었으리라 짐작했다. 우리는 보통 의료를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의료가 멈추면 죽는 사람이 늘어난다' 생각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심정지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와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생명을 구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시민들은 "그렇다, 의료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병원 밖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5-10%에 불과하고, 병원 내 심정지라 해도 20% 내외에 그친다. 그럼에도, 의료와 생명 구조의 이미지는 대중의 인식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의료인 파업의 역설: 사망률이 왜 늘지 않았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의료인 파업과 사망에 관한 연구 결과들은 상식을 뒤집는다. 의사의 의료가 멈춰도 죽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는다. 즉, 의료인이 파업하더라도 사망자는 늘지 않는다.

의료인의 파업 문제는 생각보다 학술적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 그리니치 대학의 에섹스 박사(Ryan Essex)는 이 주제를 집요하게 탐색해 온 드문 연구자 중 한 명이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2021년까지 출간된 다양한 학술문헌을 검토하여 의료인 파업의 건강 영향을 종합한 연구(☞바로가기: 의료 파업이 환자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 관찰 연구의 체계적 검토 및 메타 분석)에 따르면, 의료인의 파업이 병원 내 환자사망률 증가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0년 의사 파업의 영향을 분석한 연구(☞바로가기: 의사들의 파업이 의료기관 내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는 파업 기간 사망률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고하고 있으며, 2024년 의료대란의 영향을 분석한 최근 연구(☞바로가기: 전공의 진료중단이 한국의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 2024년)에서도 해당 기간 사망이 증가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Photo: Mike Blake (Reuters)

Photo: Mike Blake (Reuters)

왜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걸까? 완전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지만 하나하나 검증해야 할 몇 가지 설명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 설명은 병원들이 전문의, 중증응급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진료 효율성이 올라간 덕분에 이런 큰 난리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갈등을 빚어온 정부와 의사 모두가 이 결과를 자신들의 노고로 돌릴 수 있는 해석이기도 하다.

대형병원 환자들의 숫자는 줄었지만 중증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의료 대란 상황에서 실제로 많은 의료진이 평소보다 더 높은 업무를 부담했을 것이다. 전공의가 ‘배우는 중인 의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진료의 주체가 전공의에서 전문의나 교수로 바뀌는 상황은 어느 정도 의료대란의 영향을 완화했을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의 지식을 고려할 때, 이러한 의료진의 노력만으로 의료대란으로 인한 사망률 증가가 완전히 상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다 타당한 설명은 의료대란으로 인해 일부 환자들은 더 위험해졌지만, 또 다른 일부는 오히려 위험이 감소했을 가능성이다.

과잉의료의 함정: 더 많은 치료가 더 좋은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