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관의 위험한 주장, '정밀 의료'로 포장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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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의 타이레놀 섭취가 자녀의 자폐 스펙트럼을 유발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의견을 대통령에게 개진한 보건복지부 장관 케네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포경수술도 자폐 스펙트럼의 위험을 높인다고 주장하며 이런 위험 요인들을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새로운 연구비를 편성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황당무계하게 들리는 이 주장들의 논리가 정밀의료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진지한 과학과 황당한 사이비 의학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예상 밖의 대답일지 모르겠지만 그건 바로 세상과 사회를 위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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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보건복지부 (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HHS) 장관 로버트 F. 케네디는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71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그는 요즘 ‘구호 외치기’에 한창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Make America Great Again (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차용한 Make America Healthy Again (MAHA,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라는 구호다. 이뿐일까. 백신에 대해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대체의학과 건강보조식품을 열렬히 옹호한다.

공화당 상원의원 중에도 그를 청문회에서 보이콧하려는 이들이 적잖게 있었다. 때문에 케네디는 자신이 장관으로서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하고나서야 겨우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취임 9개월 차에 접어든 그의 지난 행적을 돌아보면 그의 다짐은 대부분 거짓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케네디는 이상하리만큼 자폐 스팩트럼에 큰 집착을 보인다. 그에게 자폐 스팩트럼은 마치 전가의 보도와도 같다. 백신을 반대하는 것도 자폐증의 위험을 높이기 때문이며 포경 수술이 자폐를 유발한다고도 주장한다 (☞참고자료: RFK Jr. suggests circumcision is linked to autism. Here's what experts say. - CBS News).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케네디 장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임산부의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와 연결됐다는 주장을 직접 펼쳤다. 미국 식품의약국 (FDA)은 후속 보도자료에서 미국역학회지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와 미국의학회지 (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 Psychiatry) 에 발표된 연구 두 편을 인용하며 장관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참고자료: FDA Responds to Evidence of Possible Association Between Autism and Acetaminophen Use During Pregnancy | FDA).

연구에서 의료까지, 수상한 행보

의료와 관련한 연구 결과가 실제 사람들에게 가 닿으려면 수없는 검증과 적용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의료지침이란 한 두 편의 연구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장관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 스웨덴과 일본에서 이뤄진 독립적인 연구들은 타이레놀과 자폐 사이 연관성을 부정한다. 타이레놀을 먹는다고 해서, 자폐성 질환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는 논리는 근거 없다는 뜻이다(☞관련자료: Statement from Autism Science Foundation Regarding Wall Street Journal Report “RFK Jr., HHS to Link Autism to Tylenol Use in Pregnancy and Folate Deficiencies” - Autism Science Foundation). 특히, 스웨덴의 연구는 240만명의 아동을 추적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조건이 비슷한 형제들을 비교했다는 점에서 다른 연구보다 신뢰도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의생명과학 연구비를 집행하는 보건복지부 산하의 미국보건연구원 (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은 수상한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장관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재밌는 것은 케네디의 주장이 근래 각광을 받고 있는 정밀의료 (Precision Medicine)의 핵심 논리와 아주 흡사하다는 것이다. 개인화 의료 (Personalized Medicine) 혹은 개인 맞춤형 의료라고도 불리는 정밀의료는 개인의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바탕으로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가리킨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같은 치료라도 사람마다 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거에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우리는 DNA에 담긴 개인의 유전정보를 모두 해독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DNA를 넘어 RNA, 단백질, 그리고 대사체와 같이 인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분자와 물질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물질을 측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CT나 MRI를 정밀하게 판독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나 개개인의 생활패턴을 기록하는 스마트워치와 같은 장치들도 정밀의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정보를 모두 종합하면 개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치료의 효과를 예측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예방 및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러한 설명은 한국의 유명한 대학병원 홈페이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수를 대상으로 한 임상 의료 정보를 통해 개인의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최적’의 치료를 제공한다는 식의 홍보 문구다(☞관련자료: 분당서울대학교병원. 미래 의료가 목표하는 ‘정밀의료’를 아시나요?).

◇‘정밀의료’를 선전하는 국내 언론의 기사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2025년 10월 26일 검색.

◇‘정밀의료’를 선전하는 국내 언론의 기사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2025년 10월 26일 검색.

케네디 장관의 주장은 이러한 정밀의료의 이념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비록 스웨덴의 대규모 연구에서 타이레놀이 자폐 스팩트럼에 미치는 영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타이레놀의 평균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떤 아동들이 실제로 타이레놀로 인해 자폐 스팩트럼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아동들에 가려져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타이레놀을 먹어서 자폐성 질환을 가지게 됐는데, 이와 같은 결과가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논리다. 그러므로 이 논리를 따르자면, ‘최첨단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타이레놀로 인해 자폐 스펙트럼의 위험이 높아지는 아동과 산모들을 선별할 수 있게 된다.

타이레놀을 먹어서 생기는 자폐성 질환을 열심히 찾아내자, 이러한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비를 투입하자는 논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 논리는 자폐 스팩트럼과 타이레놀 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과 약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어서 케네디 입장에서는 활용도가 아주 높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포경수술처럼 케네디가 임의로 지목한 자폐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다른 요인들이 떠오른다. 아무리 황당무계한 원인이라도 일련의 특성을 지닌 누군가는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반드시 그 특성이 무엇인지 밝히는 연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논리는 케네디 뿐만 아니라 많은 의학 연구자들도 즐겨 사용한다. 정밀의료를 통해 질병을 극복하겠다는 연구는 셀 수 없이 많고 그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95년부터 2025년까지 정밀의료를 표방하는 연구의 숫자를 보면 과거 1년에 수백 건에도 못 미치던 것이 2025년에 3만 건을 돌파하며 100배 넘게 성장했는데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 미국의학도서관 문헌 데이터베이스 (Pubmed)에 등장하는 정밀의료 문헌수. 2025년 10월 27일 검색.

◇ 미국의학도서관 문헌 데이터베이스 (Pubmed)에 등장하는 정밀의료 문헌수. 2025년 10월 27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