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1만 명 부족하다"는 발표... 숫자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30일 활동을 마친 의료인력추계위원회는 2040년까지 최대 1만 1,136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관련 기사: 추계위 "2040년 의사 1.1만명 부족"…의사단체 반발). 의료계는 산출 근거를 신뢰할 수 없다며 즉각 반발했다. 2020년과 2024년 정권과 규모에 무관하게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해 왔던 의료계의 반응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일수록 더 두드러진다. 과거 코로나19 유행 당시의 감염자 수 추계로 방역 전략을 급선회시켰던 사례가 대표적이다(☞관련 기사: '26만 죽는다' 가설에 화들짝…영국 코로나 대응전략 180도 급변). 최근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사 부족 규모 추계 역시 마찬가지다. 숫자의 과학적 엄밀성이 논의의 주도권을 쥐면서, 정작 우리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들은 수치 뒤로 숨어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추계(projection)의 가정, 사용된 방법론의 과학적 엄밀성은 그에 따라 얻어진 결론을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설득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추계를 하는 본래의 이유를 잊지 않는 것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정답을 찾기는 어렵지만,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추계로 얻은 숫자는 정답이 아니라, 해결책을 쌓아 올리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비계(飛階, scaffolding)인 셈이다.

비계가 무너지는 사고는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도 많이 다친다. 과학적으로 건전한 추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40625151600051

비계가 무너지는 사고는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도 많이 다친다. 과학적으로 건전한 추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40625151600051

'숫자 맞추기'의 함정

하지만 추계는 흔히 그 목적을 잃어버리곤 한다. 추계는 더 나은 결정을 돕기 위해 잠시 세워두는 비계와 같아서, 가정과 모형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괏값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곤 한다. 숫자들이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낼 때, 전문가들도 어려움을 겪고 서로 합의하기가 힘들다. 정책 결정자와 시민들 역시 어지러운 보고서와 숫자 속에서 헤매는 건 마찬가지다. 최고의 모형을 선택해 믿을 수 있는 숫자를 만들어 내라는 압력이 전문가, 혹은 숫자를 다루는 사람에게 부과되지만, 이 요구를 맞춰 내기는 일이 매번 그토록 어려운 이유다.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만드는 숫자이다 보니, 추계로 얻어진 숫자는 정책과 결부되어 논쟁의 불씨가 된다. 감염자가 늘어날 것 같으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줄어들 것 같으면 완화하게 되는 것처럼, 사회적 관심을 받는 추계는 실질적 정책 결정을 목표로 한다. 그러다 보니 정책의 찬성자와 반대자들은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수치만을 골라 지지하는 정책을 옹호한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예상하듯 각자 가진 전제와 경험, 전문성이 서로 다르다. 이렇다 보니 각자의 합리성 역시 일정하게 차이가 난다. 공동의 목표를 위한 열린 숙의를 통해 합리적 논증을 통한 합의를 해내면 좋으련만, 현실은 매번 아쉽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과학을 주장하던 이들은 금방 내가 찬성하면 과학이고 반대하면 비과학이라는 식의 파편화된 진영 논리로 빠져들곤 한다.

불확실성을 고려해 범위나 확률의 형태로 값을 내어놓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책의 집행은 범위나 확률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려면 의대 정원을 몇 명 늘린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한다는 것과 같은 형태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범위를 제시해 봐야 결국 하나의 숫자를 고르는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것에 불과한 상황이 된다.

숫자의 정치가 만드는 결과들

추계를 둘러싼 숫자의 정치가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회의록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위원회를 꾸려 전문가들에게 맡긴 결과, 합의안을 도출했다면 차선 정도는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2026년에도 현실은 과학적으로 건전한 숫자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늘리려는 측과 줄이려는 측 사이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만들어낸 힘의 균형점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관련 기사: 의사 인력 추계위 참석 위원들 "추계 타당성 부족해").

미래는 본래 불확실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추계는 나아갈 방향을 흐릿하게나마 일러주는 길잡이다. 그렇다면, 추계 작업의 본질은 매년 추계를 반복하며 현실을 면밀히 살피고 수치를 끊임없이 수정해 나가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떠한가? 의료계의 여론전을 바라보노라면 작금의 논의는 의사인력 추계의 형식을 빌려 각자의 마음속에 정해둔 미래상을 강제로 관철하려는 오만함에 가깝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10차 회의록 p. 43 https://chwp.go.kr/kor/comAct/comActDetail.html?act_seq=30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10차 회의록 p. 43 https://chwp.go.kr/kor/comAct/comActDetail.html?act_seq=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