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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가 더욱 심한 폭력과 분쟁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합의한 원칙과 규범이 하나둘씩 깨지면서 평화,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 모두 위협받는 양상이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언급하는 공포 섞인 예측, 혹은 '평화로운 시대는 끝났다'는 냉소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나? 인류의 역사는 인간 공동체가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손을 잡고, 인간사회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 왔음을 보여준다. 건강이 인간을 '가능케 하는' 도구적 가치가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인간의 건강과 존엄이라는, 변치 않는 가치를 중심에 두고 손잡을 수 있다. 2026년 지금, 1978년 인류가 잠시 만난 '미래'를 복기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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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10월, 유럽 각국의 전권대사 100여명은 현재 독일 땅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 모여 역사적인 서명을 한다. 30년간 독일 지역 일대 3분의 1을 죽인 것으로 기록된, 전쟁의 참혹한 살육을 멈추기 위한 조치였다.
4년에 걸친 지난한 합의 끝, 대표단이 도출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주권의 절대성이었다. 이른바 내정불간섭. 서로의 신념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 원칙은 서로 다른 신과 이념을 가진 집단들이 충돌할 때 물리적 파국을 막아주었다.

헤라르트 테르보르흐 - 베스트팔렌 조약의 비준(1648)
오늘날 우리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아슬아슬한 난간 위를 걷고 있다. 2026년 1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미군 특수부대(델타포스)와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요원들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했다. 자그마치 300여년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국제사회가 지켜오던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 체제는 무려 4세기에 걸친 법적 발전 속에서 현대 국제법으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유엔 헌장은 2조를 통해 국가들 사이에 더 높거나 낮은 위계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제2조 1항은 "이 기구는 모든 회원국의 주권 평등 원칙에 기초한다"고 명시하며, 제2조 4항은 "모든 회원국은 그 국제관계에 있어서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대하여, 또는 유엔의 목적과 양립하지 아니하는 어떠한 기타 방식으로도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행사를 삼간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제2조 7항은 "본질상 어떤 국가의 국내 관할권 안에 있는 사항에 간섭할 권한을 유엔에 부여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한다.
국제 판례도 이 원칙을 확인해왔다. 1928년 팔마스 섬 사건(Island of Palmas Case)에서 막스 후버(Max Huber) 중재재판관은 주권을 "지구상의 특정 부분에 대해 배타적으로 국가의 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고 정의하며, 주권이 곧 독립성임을 천명했다 (☞참고자료 : 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 Island of Palmas Case (Netherlands v. USA), 1928). 1986년 니카라과 사건(Nicaragua v. United States)에서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주권 평등 원칙과 불간섭 의무가 단순한 조약상의 의무가 아니라 국제 관습법임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Military and Paramilitary Activities in and against Nicaragua (Nicaragua v. United States of America), Merits, Judgment, 1986).
동시에 잊을 수 없는 점은 베스트팔렌의 평화가 종교전쟁의 광기를 멈췄다 한 들, 인민들에게 평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베스트팔렌의 평화는 영주들과 왕들의 평화였지, 통치 대상 인구인 농노들과 빈민들의 평화는 아니었다. 다만 이 계급적인 평화는 기록되거나, 언급되기 어려웠다. 주권 불가침의 원칙은 국가에 평화를, 인민에 착각을 선물했다. 권력자들은 비로소 자국 내에서 저지르는 구조적 폭력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가릴 수 있었다. 베스트팔렌의 유산을 이어받은 현대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 국제정치학자 인로(Enloe)가 말한 전후 여성 게릴라의 삶, 그리고 기지촌 여성의 삶을 생각하더라도, 혹은 한국에서 ‘국가의 이익’이라는 미명 아래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삶을 보더라도 ‘평화’는 계급적인 단어였다.
슬로건으로서의 건강
그렇기에 비록 ‘평화’의 긴 시기가 찾아왔다고 한들, 국민국가 내외부를 둘러싼 폭력은 중단되지 않았다. 특히 미국 패권과 다극체제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던 지난 10여년, 세계적으로 분쟁 사망자는 연 10만명 이상을 다시 기록하며 새로운 시기의 경종을 울렸다(☞참고자료 : Uppsala Conflict Data Program). 이 폭력은 육신의 껍데기를 이고 살아야 하는 모두에게 공포를 불러오는 일이었다.

Davies, S., Pettersson, T., Sollenberg, M., & Öberg, M. (2025). Organized violence 1989–2024, and the challenges of identifying civilian victims. Journal of Peace Research, 62(4).
평화의 다리를 놓는, 슬로건으로서의 ‘건강’은 어쩌면 이 공포감에서 기인한다. "건강은 그 고유한 가치와 보편적 수용성 때문에 평화와 연대, 그리고 민중 사이의 이해를 위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1984년 범미보건기구(PAHO)는 중미와 파나마에서 시작한 '평화를 위한 다리로서의 건강(Health as a Bridge for Peace)'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이렇게 내걸었다 (☞참고자료 : PAHO (1984). Priority Health Needs in Central America and Panama: Health as a Bridge for Peace, Solidarity and Understanding). 여기서 보듯, ‘계급적인 평화’를 타파하자는 슬로건으로서도, 전쟁의 포화를 멈추자는 제안으로서도 ‘건강’은 국제사회에서 여러 차례 불려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