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개혁’과 동시에 ‘권리 구제’와 ‘인권 보호’라는 과제를 언급하고 나섰다. ‘검찰개혁’에 있어서도 “최종 목표는 국민의 권리 구제와 인권 보호”라고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을 풀어 보자면, 개혁의 기준은 단순한 효율이나 성과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어떤 권리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에 놓이는 셈이다.
비록 여러 개혁이 단지 “무엇을 고칠 것인가”라는 과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해도, 이 대통령의 말처럼 ‘권리 구제’나 ‘인권 보호’를 염두에 둔다면 개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기존의 법질서가 어떤 구조 속에서 형성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어떤 권리가 충분히 보호되지 못해 왔는지를 차분히 점검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특히 형벌권에 기초한 국가 최고 법 집행기관인 검찰의 개혁이 조직의 권한과 운영 문제를 넘어 형사사법이 작동하는 기준 자체를 되묻는 작업이라면, 그 기준의 토대가 되는 형법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형법은 수많은 죄와 형을 규정하고 있지만, 사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리 침해와 반복적·구조적 폭력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형법의 일반 규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 아래, 별도의 대책과 특례법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이는 현실의 복잡성을 반영하려는 시도였지만, 동시에 형법이 어떤 침해를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흐리게 만든 측면도 있다.
‘젠더폭력’ 흐리게 만드는 현행 형법
최근 연예인 가족 사건을 계기로 형법상 친족상도례가 약 70년 만에 폐지된 반면,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형법상 낙태죄 조항은 국회의 입법 미비로 인해 여전히 형법 조문에 남아 있다. 해당 조항은 현재 처벌 효력을 상실한 상태지만, 형법이라는 기본 규칙은 정비되지 않은 채 공백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이처럼 어떤 규정은 비교적 신속히 조정되는 반면, 다른 규정은 장기간 방치되는 상황은 형법이 권리 보호의 기준으로 일관되게 작동하고 있는지 되묻게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안별 대응이 누적되며 가장 복잡한 모습을 띠게 된 젠더기반 폭력을 다루는 법과 제도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러브플랜에서 제작한 카드뉴스(2023.05.26.). 젠더의 이해. https://www.loveplan.kr/home/article/5395.htm ****
젠더기반 폭력이란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디지털성폭력 등으로 불려온 폭력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나 친밀한 관계를 매개로 발생하며 반복·지속되는 폭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폭력은 개인 간의 일탈이나 우발적 사건으로만 보기 어렵고,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장기간 누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우리 법체계는 이러한 폭력을 하나의 연속된 문제로 다루기보다는, 폭력이 발생한 관계와 상황의 특수성을 이유로 여러 법률로 나누어 대응해 왔다.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디지털성폭력 등은 형법상 폭행·상해·강간 등의 구성요건과 맞닿아 있음에도, 관계와 상황에 따른 대응을 이유로 특례법 중심의 규율이 누적되어 왔다. 그 결과 폭력은 폭력이 발생한 장소와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법률로 분절되어 규율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폭력의 가해자 처벌에 관련된 법률만 보더라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병존하고 있다.
한편으로 국가의 역할은 처벌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폭력의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지원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법률로서 다루고 있다.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법률로는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스토킹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처럼 동일한 폭력을 두고도 처벌과 지원이라는 국가의 기능에 따라 법체계가 다시 한 번 분기되면서, 폭력에 대한 대응은 점차 복잡한 층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성평등가족부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정의에 남성 피해자를 포함하고, 법의 명칭까지 바꿀 수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남성도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국가는 누구의 피해든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응답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형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 법령의 명칭이나 정의를 조정하는 방식만으로 폭력의 구조적 문제까지 함께 해결할 수 있을지는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현행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여성폭력으로 정의하고, 관련 법률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지원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림 출처: 저자 생성)
폭력을 어떻게 이름 붙일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폭력이 타인의 신체와 정신,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관계를 침해한다는 공통된 본질을 가진다는 점이다. 교제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착취처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사건들 역시, 실제로는 동일한 침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반복되고 확산되는 양상에 가깝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나 폭력의 양상에 따라 폭력을 세분화하고 유형화하는 대응 방식만으로는 폭력의 일상화를 예방하거나, 전파와 확산에 조기에 개입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