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4일, 전국전공의노동조합(이하 전공의노조)이 출범했다. 이들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연대를 통해 ‘값싼 노동력’으로 소모되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단결하고 투쟁하겠다 선언했다. 이전에도 전공의노조 설립과 활동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행기적 성격의 전공의 특성상 단발적 움직임에 그치곤 했다. 이번 전공의노조는 ‘노조다운 노조’를 표방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의 의지를 다졌다(☞참고자료: 5년 만에 다시 노동조합 시동 전공의들…이번에는 다를까?).

그 중심에는 ‘노동’이 있다. 이들은 의료 행위 역시 노동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서 모든 정치적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기존에 의사협회나 전공의협회 등의 조직은 그들의 행위를 노동으로 정의하기 보다는 전문 ‘기술(skill)’ 또는 지식(knowledge)’의 영역으로 다룰 뿐이었다. 따라서 그 해법 역시 수가 인상, 독점권 유지와 같은 영역에 머물렀다. 반면, 전공의노조는 전공의협의회와 의협과도 거리를 두면서, 그들의 기술과 행위를 명시적으로 ‘노동’이라 부르고 노동시간 준수, 임금 보장, 안전 등 보다 직접적인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전공의노조 위원장이 한 인터뷰에서 밝인 것처럼 “병원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집단적으로 깨달은” 것이 큰 동력이 된 듯 보인다(☞참고자료: “전공의끼리 연대 중요하지만 사회적 연대에도 나서고 싶어”). 실제 수련병원은 수련을 핑계삼아 이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력으로 활용해 왔고, 국가는 이 불완전한 노동력에 의존한 대형병원의 인력 구조를 묵인해 왔다(☞참고자료: 1만 2천명에 휘둘리는 나라, 전공의를 ‘괴물’로 키웠다).

의료를 노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전공의 이후의 직업적 삶까지 이어질지, 노동조합 활동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여전하다(☞참고자료: 깃발 올린 전공의노조, 3~4년 수련 전공의 특성상 지속가능성 확보는?).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노동 착취 구조에 저항하며 처우 개선과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다른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마땅한 지지를 보냈다.

전공의노조의 요구

전공의노조는 노동의 언어를 빌어 지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동시에 타 의사직역 단체와 차별점을 강조해 오고 있다. “안전한 노동 환경”과 “적정 임금”의 확보와 “노동 여건 개선”, 그리고 이를 가능토록 하는 “근로기준법 적용”, 더 나아가 “노사 협의기구” 개편 등의 요구는 선언문 뿐 아니라 전공의노조 강령과, 설립 이후 발표한 입장문과 성명서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재분배의 최대화를 요구하는데 그 활동 범위가 머무른다면, 기존 전문직 이익단체와 거리두기는 수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는 현재 전공의노조 역시 그 역할 범위를 단체교섭의 경제적 행위자로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는 데서 비롯한다. 영국의 맑시즘 산업학자 Hyman은 노동조합의 본질이 시장과 계급, 사회의 삼각관계 속에 있다고 분석하며, 미국의 비즈니스 노동조합주의에서 보여지듯 일자리 권익만을 방어하는 목적의 단체를 ‘경제적 이익단체’에 가깝다고 설명한다(☞참고자료: Hyman, R., 2001. Understanding European Trade Unionism: Between Market, Class and Society).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경제적 질서에 도전하는 운동적 측면, 시민사회의 행위자로서 거시적인 사회복지 정책에 관여하는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일말의 가능성은 “연대”를 통해 “노동착취 대물림”을 근절하겠다거나, “한국의료제도의 발전”과 “국민건강권의 향상”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전공의노조의 선언에 있다. 하지만 교섭단위 분리 등 지금까지 보여준 이들의 활동 전략은 그 가능성을 되묻는다(☞참고자료: 전공의노조, 25개 수련병원서 교섭권 확보…”교섭 결렬시 파업도 가능”).

전공의노조가 노동권 보장, 특히 수련병원 내에서 위계가 엄연한 교수와 전공의 사이에서 적절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대체로 타당해 보인다. 어떤 노동자도 직업훈련을 빌미로 과도한 노동과 착취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노동에 대한 법적 보호는 오랜 시간 한국의 노동자들이 쌓아올린 투쟁의 피와 눈물이 어린 성취이며, 이 제도적 보호가 전공의를 비켜갈 이유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다른 의사직역단체와 마찬가지로 의대 증원에 반대하고, 의사 업무를 전문간호사 등 타 직역에게 이양하는 업무 조정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 왔다. 전공의노조의 요구가 노동자로서의 권리 주장이자 옹호가 맞는지 의심하게 되는 까닭이다. 특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직종인 의사의 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하기 위해 장벽을 구축하는 직업적 폐쇄(occupational closure)의 전술 중 하나로 노동자의 권리를 내세우는 것 뿐이라면, 전공의노조의 가치와 의의는 그 빛을 잃는다.

연대와 고립 사이

전공의 역시 노동자지만, 그 독점적 지위와 전문성으로 인해 다른 직종에 대한 위계적 권한을 부여 받는다. 노조 출범 전인 2024년 2월, 전공의들은 의대증원에 반대하며 '집단 사직'을 감행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후 곧바로 중단한 전공의들의 업무는 그대로 공백으로 남아있기 보다는 다른 보건의료 노동자들에 의해 메워졌다. 당시를 기점으로 제도화된 PA와 간호사에게 전공의들의 업무가 일부 배분되었고, 나머지 업무는 수련병원의 전문의와 교수들에게 전가되는 식이었다. 또는 병원은 전체 업무 범위를 축소하는 식으로 조정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파생된 여러 부담은 환자, 그리고 병원과 지역사회의 다른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감당하면 그만인 형국이 지속되었다. 병원은 4개월이 지나서야 사직서를 수리했는데, 무단이탈이 용인되는 동안, 다른 노동을 해법삼아 이들에게 고통을 전가했던 4개월이라는 시간은 전공의들의 권력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으로, 이 4개월은 전공의들의 노동이 가진 구조적 권력이 고정불변하지 않으며, 언제나 사회적 조정을 통해 대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함께 알려준다. 업무의 대체 가능성, 그리고 의료대란 시기 건강지표 악화가 뚜렷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고려하면, 전공의들의 구조적 권력은 불완전하며, 절대적이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확인하기도 한 셈이다. 다른 노동의 연합과 연대가 없다면, 전공의노조가 원하는 최소한의 재분배도 어려울지 모른다.

전공의노조가 이미 말했듯, 우리의 노동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전공의노조의 요구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직역의 병원 노동자들의 요구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이를 인정하고, 함께 세를 넓혀 나가는 일은 노조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전공의노조는 사회적 연대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전공의의 노동이 단순히 선언만으로 남지 않고,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다른 노동자들과의 조직적 연대에 기반한 권력 요구가 필수적이다. 다른 노동과 연합하지 않는 세력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수세적 연합이 아닌, 다른 노동에 대한 존중에 바탕한 연대가 필수다. 연대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 할지라도, 함께 더 나은 노동을 요구하기에 동조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데에서 시작한다. 건강과 의료 현장의 정의를 바라는 숱한 노동자들이 그들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