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 한국에서 개봉한 일본 다큐멘터리 ‘어떻게 해야 했을까?’는 하반기 극장가에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다. 흥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개봉 한 달여 만에 누적 관객 9만 명을 모았고, 관객과의 대화와 평론도 이어졌다.

영화는 후지노 도모아키 감독이 홋카이도에서 살아온 누나 마사코와 부모를 20여 년에 걸쳐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마사코는 1983년 조현병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의사이자 연구자였던 부모는 처음에는 딸을 병원에 데려갔지만, 이내 병이 없다고 주장했다. 동생은 치료를 설득했으나 부모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사코의 증상은 더욱 심해지고, 부모는 급기야 집 현관문에 자물쇠를 채우기 이른다.

2008년, 마사코의 모친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나 돌봄 부담이 감당할 수 없어진 뒤에야 부친은 딸의 입원 치료에 동의한다. 마사코는 석 달 뒤 퇴원했고,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일상을 이어갈 만큼 상태가 호전된다. 발병에서 입원까지 25년, 입원에서 퇴원까지 석 달.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도 이 시간의 차이를 보며 마사코와 가족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더 일찍 병원에 갔어야 했다”는 것이다. 배급사의 한 홍보 게시물 영화의 교훈을 이렇게 요약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제작사의 영화 GV 안내 캡쳐.

◇제작사의 영화 GV 안내 캡쳐.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에는 주어가 없다

그러나 누가 병원에 가야 했을까?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영화의 제목에 주어가 없듯,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에도 주어가 없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려 줄 사람이 없어서, 도움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아서, 혹은 병원까지 함께 이동해 줄 사람이 없어서 고령자, 장애인이 혼자 아파야 하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더라도, 영화의 맥락을 고려하더라도 참으로 이상한 말이다. 더욱이 영화에서 아픈 사람은 마사코였지만, 자물쇠가 채워진 집에서 그가 혼자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은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를 향한 말이다. 마치 장애 학생을 ‘민폐’라 부르며 분리교육을 주장하는 글들, 교실의 ‘금쪽이’를 탓하는 말들이 사실 ‘엄마’를 향한 공격이듯이 말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환자, 보호자, 더 나아가 시민을 두고 훈계하는 ‘주어 없는 말’이 이미 우생학의 중요한 기술자 노릇을 한 의료권력, 그리고 의료 ’전문가’ 들이 사회를 통치해 온 이데올로기 그 자체이기도 했다는 데 있다. 일리치가 지적했듯, 의료권력은 근대국가 내부에서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의하고 처방할 권한을 독점하는 반면, 돌봄은 외주화하고 격하하는 방식으로 그 권위를 획득한 탓이다.

즉, 의료 권력은 돌봄 없이 사회를 통치하고 훈육하는 자리에만 서려고 하는데, 돌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자리 그 자체가 의료권력의 ‘특권적 무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개념을 고안한 정치학자 조안 트론토는 민주주의의 기본 질문이 돌봄을 누가 책임지는가라고 말한다. 돌봄이란 인간 모두가 필요로 하는 일이자, 한 사회가 공평하게 나누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책임 분배를 자기에게 유리하게 기울이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는 아예 자신을 ‘책임질 사람’ 목록에서 빼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러한 의료권력이 환자를 병원에 가지 못하게 만드는 데도 작용한다는 데 있다. 마사코의 양친은 모두 의사 면허를 가진 연구자였다(☞관련 자료: 「"격렬하고 식탁에 뛰어 타고..." "울음소리도"」). 이들에게 의학은 직업이자 생애였고, 딸에게 병이 없다고 선언할 수 있게 한 권위이기도 했다(☞관련 자료: 영화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공식 사이트). 그렇기에 그 권위가 놓인 배경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듯, 홋카이도는 제국주의 일본이 침략해 국민국가로 동화시킨 땅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근대 일본에서 정신의학은 처음부터 '문명'을 위해 의료를 동원하는 근대적 과업으로 주어졌다. 현대 의학의 권위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식민지 의학은 피정복자를 재고 분류해 누가 ‘문명’이고 누가 보호와 교정의 대상인지 판정하는 권위였다. 영화에서 어머니는 스스로 그가 홋카이도를 복속시킨 식민 지배자의 후손임을 밝힌다. 그가 살아온 질서 안에서 ‘정신질환’이 어떠한 위치의 상징인지를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식민지배의 효과는 그 공식적인 지배가 종료된 이후에도 오래 남는다. 의료 역시 ‘남아있는’ 효과의 대표적인 분야로 기능해와 왔다. 예를 들어 1948년 일본 우생보호법은 조현병을 유전성 질환으로 분류해 본인 동의 없는 불임수술을 허용했다. 본인이나 배우자의 4촌 이내 친족에게 그런 병이 있는 경우까지 수술 사유로 삼았다.그리고 마사코가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1983년, 도쿄 북쪽의 우쓰노미야 병원에서는 환자 두 명이 의료진에게 맞아 숨졌다. 이듬해 봄 보도로 실상이 드러난 이 병원은 도쿄대 정신의학교실과도 연루돼 있었다. 정신과 환자에 대한 폭력에 각 의료기관이 체계적으로 연루돼 있었음을 시사하는 보도였다 (☞관련 자료: 우츠노미야 병원 사건으로부터 정신 위생법 개정까지의 역사의 재검토 : 고발자 및 그 협력자의 의도와의 관계).

가족이 이런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영화는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우생학의 역사가 여전히 현대에도 남아있으며, 이는 환자로 하여금, 보호자로 하여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료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만드는 현실적인 장벽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과 입원 병동에서 환자에게 의료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으며, 환자가 지역에서 잘 어울리며 살아가게 하기 위한 통합적인 서비스는 여전히 뒷전으로 밀려 있는 한국에서도 이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관련 기사: [단독] ‘251시간 묶여 사망’ 춘천 정신병원…‘코끼리 주사’ 매일 투약).

다른 의료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렇기에 영화에 대해 말하는 자리에 '전문가'가 먼저 등장하고, 또, 분석, 안타까움, 혹은 지식으로 가장한 훈계를 듣는 일은 이 영화를 가장 반사회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혹은 이 돌봄의 무게를 나눠 가지지 않은 채, 정신질환인과 함께하는 사람들, 혹은 정신질환인 당사자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 역시 무책임하다. 발병에서 입원까지 걸린 25년은 누군가에게 '치료'가 '늦어진' 시간이겠지만,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름의 답을 찾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자물쇠가 걸린 문 안에서 일어난 일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마사코의 가족이 거주하기도 했던 홋카이도 지역은 오래 전부터 정상성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우라카와에서는 1984년 베델의 집이 출범해 정신장애인이 병원 밖에서 살고 일하며 서로를 지원하는 실천을 키워 갔다. 이 사례는 사회에서 그동안 ‘비정상’으로 간주돼 온 사람들의 자발적 조직과 이에 대한 시민적 연대, 그리고 이 연대 안으로 의료와 복지가 사람의 삶을 향해 들어올 때 ‘다른 삶’이 가능함을 보여 준다.

◇베델의 집 전경. https://urakawa.bethel-net.jp/aboutus

◇베델의 집 전경. https://urakawa.bethel-net.jp/aboutus

그러나 그러한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환자의 어려움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감독이 회고하듯, 여전히 많은 이들은 이와 같은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 접근성의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와 같은 시설이 언제까지나 폭력적인 주류 의료의 소수적 ‘대안’으로 존재하는 한 당사자와 돌보는 이들은 ‘다른 의료’를 향해 가는데 또다시 수많은 장벽을 마주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료에 대한 언제나의 질문이 그렇듯, "어떻게 해야 했을까"에 대한 답 역시 '좋은 사회'를 향한 상에 기반을 두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