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4명. 국립대병원 간호사로 입사한 후 1년 내로 퇴사하는 비율입니다. 열악한 근무 조건과 높은 노동 강도에 지친 간호사들은 오늘도 퇴사를, 이직을 선택합니다. 되돌아 보면 이는 새로운 현상도 아닙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간호사의 이직은 사회적인 문제로 꼽혔고,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발표된 대책을 돌이켜 보면 '인력충원'이외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반문하게 됩니다. HSC는 지난 7일 공개된 '환자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에 이어 간호노동을 치밀하게 들여다보기 위한 또 다른 논점을 제안합니다. 간호 인력을 단순히 '자원' 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넘어서, 이 현상의 함의와 권력구조를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자격증 나오는 직업을 가지면 일자리의 안정이 따라온다는 세간의 말은 직업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다. 안정적 일자리란 예컨대 한 직장에서 오래 일을 할 수 있거나, 실직 이후 다른 일자리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을 실천할 수 있고, 실직 이후 실업급여 등을 통해 충분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대표적인 전문직 가운데 하나인 간호사로 일한다면 이 모든 안정을 기대해도 될까? 안타깝지만 이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한국에서 간호사란, 다른 병의원으로 빠르게 이동해 고용상태를 유지할 수는 있어도, 한 곳에서 오래 일하기는 어려운 직종이다. 국립대병원 간호사로 입사한 후 1년 이내 그만두는 이들은 40%가 넘는다니, 다른 병의원에 입사한 간호사들의 이른 퇴사율은 더욱 높을 가능성이 크다. 근속연수 역시 마찬가지. 한국 간호사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7.8년으로, 임금 노동자들의 평균 근속연수 7.2년보다 조금 더 길 뿐이다. 불안정한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숙련의 정도가 중요한 간호 노동에서 일자리를 자주 옮기는 것은 간호사 개인을 넘어 보건의료체계 전반, 나아가 시민들의 건강과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간호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가 이직하는 이유는 주로 열악한 근무 환경과 높은 노동 강도, 낮은 임금 수준, 위계적 직장문화, 그리고 임신, 출산, 육아, 가족돌봄 제공 때문이다. 하지만 몇 번의 이직으로 모든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요행을 바라는 이들은 단언컨대 없다. 이들이 일하는 직장과 살아가는 나라는 앞서 나열한 문제를 마치 대한민국 모든 병의원의 ‘속성’으로 치부하는 듯 보이고, ‘원래 이 일은 힘들다’고 핑계대며 개선할 의지를 도무지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사는 형편이 퍽 나아지지 않을 것을 알고도, 흔한 말로 차악을 바라며 이직한다. 그나마 차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이직을 통해 이전보다 돈이든 시간이든 당장의 필요를 조금 더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잠깐, 어떻게 나이팅게일 간호사들이 희생과 봉사와 장인정신이 아니라 돈을 바라고 이직하느냐고 비난할 생각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쭉- 내려두길 권한다. 간호사는 숱한 직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우리가 직업을 가지는 제일의 이유는 아무렴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함이다.

실제로 간호사의 잦은 이직이 한국사회 보건의료체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 지도 오래다. 간호사의 이직을 사회문제로 정의하는 일은 간호사들의 잦은 이직을 더 이상 개인의 선택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간호사 집단의 높은 이직률 그 아래 놓여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호사들의 집단 이직을 막고,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도록 유인하기 위해 논의 중인 여러 방안을 살펴보면 이미 사람들은 답을 알고 있는 듯 하다. 인력 충원이다. ‘정답’은 간호사들이 이직을 하도록 만드는 모든 어려움이 인력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적절히 배치하거나 입원환자 간호관리료 차등제 등의 법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이직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높은 노동 강도, 낮은 임금 수준, 위계적 직장문화, 임신·출산·육아·가족돌봄 제공이 인력부족과 서로 얼기설기 엉겨 나타나는 현상일 뿐, 인력부족과 동일한 이야기는 아니다. 간호 노동에 관한 이 블로그의 다른 글을 읽으면 알겠지만, 어디 이 노동이 인력충원으로 해결되는 일인가? 간호사 이직률 줄이기가 허공을 맴도는 것은 모든 문제가 사실상 모두 같은 ‘인력부족’으로 읽히면서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인력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 ‘묘책’은 중소병원의 현실은 설명할 생각이 없다. 의원, 아니 중소병원만 해도 인력부족이 간호사의 이직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호사의 이직률은 중소병·의원에서 더욱 높다는데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대책이 대안이 될 리도 만무하다. 큰 병원과 작은 병원, 요양병원과 의원, 수도권과 지역에서 이직의 이유와 경로가 모두 같을 수도 없다. 누군가의 이직이 조직적 협상 전략이라면, 또 다른 누군가의 이직은 일자리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을 더욱 강화하는 기제일 뿐이다.

Illustration: Derek Zheng

Illustration: Derek Zheng

이 제안의 바탕에는 간호 인력을 부족분을 채워둬야 하는 ‘인력자원’으로 이해하는 협애한 이해를 넘어 노동으로 간호를 이해하자는 의지와 주장이 깔려있다. 이 글을 시작으로 여러 편에 걸쳐 간호사 이직 숨은그림 찾기를 해 볼 작정이다. 한 단계 한 단계 레벨업 하고 만나게 될 최종보스는 과연 누구일까? 그 첫 번째 퀘스트는 사직과 구직이라는 두 개의 협곡을 지나면서 이직의 숨겨진 의미 찾기다. 여러분,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