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인기를 끈 시트콤에서 고시생 캐릭터는 청년실업이 40만에 육박한다며 미래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강조했다. 그렇다고 누구나 고시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는 명문대는 간판일 뿐 학점관리, 어학연수, 대외활동으로 실속을 챙겨야만 성공적으로 정규직이 되고, 환대받으며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실감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2023년 40만 명이 넘는 한국의 청년들은 일단 그냥 쉬어가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쉰다고 해서 모든 활동을 멈춘다는 말은 아니다. 매일 새로운 채용공고가 올라오는 구인구직 사이트를 열어보는 것은 이미 습관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채용공고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지만, 99명인지 0명인지 알 수 없는 00명의 채용인원, 내부규정이 아니라 참으라고 내규인 것 같은 내규에 따르는 연봉, 숨만 쉬는 자리인지 도비인지 분간이 안 가는 의뭉스러운 직무범위에 덧붙어있는 평점과 후기가 공포스럽기만 하다. 먹고 살 걱정 없는 전공을, 취업이 보장된 학과를 선택했으면 달랐을까. 예를 들면 간호학과라던가.

누구는 전공으로 먹고살기를 일찌감치 포기하는 마당에, 정작 간호학을 전공한 친구들은 취업보장도 옛말이라고 한탄한다. 졸업도 하기 전 첫 직장으로 갈 병원이 결정되는 학과를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평생직장이 사라진 세상에서 첫 직장은 취업의 출발점일 뿐이다. 채용 후 1년 내에 사직하는 비율로 정의되는 신규간호사의 사직률. 코로나 유행에도 꾸준히 상승하더니 2021년에는 입사자의 절반 이상이 1년 내 사직을 결정한다.

놀랍게도 한국 사회에는 하루, 6개월, 11개월 만에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일을 하고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남들도 다 겪는 일, 정규직이면 감사할 것이지 못 버티고 나온 사람이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취업보장의 발판처럼 여겨지는 면허제도는 본래 특정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숙련도를 보장하고 기술이나 지식이 부적절하게 쓰이지 않도록 규제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일종의 산업의 육성 및 보호 정책인 셈이다. 그러나 보건의료체계를 관장하는 보건복지부는 산업의 육성에만 관심이 쏠려있다. 사직자의 빈자리를 빠르게 채울 수 있도록 간호대학 입학정원을 대폭 확대하더니, 채용시장에서 사용자의 편의를 보호하는데 가담하고 있다. 그 결과 2024년 간호학과 입학정원은 3만 명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당장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수가 감소하고 서울 상위권 대학에서도 미달이 속출해 대학가에 비상등이 켜진 것을 고려하면 대단히 과감한 행보다.

보건복지부의 간호사인력지원 종합대책 관련 카드뉴스.

보건복지부의 간호사인력지원 종합대책 관련 카드뉴스.

또한 수도권 대형병원은 간호사들의 구직피라미드 정점에 있다.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듯, 지역과 기업규모에 따른 보건의료체계 내 노동시장 분절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부처는 수도권 대형병원들이 간호사 공개채용을 위한 면접을 같은 날 동시에 진행해 중복합격자를 줄이겠다는 발상에 동조했다. 채용시장은 노동력을 구하는 사용자와 직장을 구하는 구직자 간 협상과 계약의 장소다. IMF 이래로 온 사회가 그토록 희망하는 노동시장 유연성은 사용자와 구직자 모두의 경쟁과 선택을 보장해야만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사직률을 낮추기 위한 자율적 개선 노력이라고 표현한 병원들의 행보는 경쟁과 선택이 아닌 담합의 산물이다.

우리는 이전 글에서 간호사 이직의 허와 실을 들여다보았다. 흔히 '간호사의 잦은 이직'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단기간 내 퇴사와 신속한 (재) 취업의 경계를 허물고 이를 간호사 개인의 문제로 수렴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퇴사와 취업이 노동시장 차원에서 반복되는 이유로 두 가지를 지목했다. 먼저 보건의료체계라는 거대한 노동시장에서 일반화된 의료기관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있다. 주 40시간제가 위협받는 와중에도 직장인들이 꿈꾸는 성공한 워라벨이란 모름지기 주4일제 재택근무다. 그러나 병동을 누비는 의료인들은 식사나 대소변처럼 인간으로서 향유해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일상적으로 침해받곤 한다.

또 한 가지 요인은 직무범위나 근로형태를 조정하기보다 퇴사와 취업을 방임함으로써 노동시장 내부에서 인력을 무한히 회전시키는 외부적 수량 유연성이다. 매년 하반기에는 국가고시를 앞둔 졸업예정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개채용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이때 전국 간호대학에는 '적어도 1년(혹은 3년)의 임상경력'이라는 말이 철 지난 괴담처럼 떠돈다. 학생들이 취업에 성공하고 국시에 합격하는 겨우내 가라앉았던 그 괴담은 신규간호사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탈출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을 곧장 취업의 절벽으로 내몰기 바쁘다.

3개월, 6개월의 조각난 경력이라도 모아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진출할 것이냐, 집 근처 중소병원에 하향지원할 것인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갈림길에는 제 3의 길이 있다. 면허로 규제되는 의료인이라는 독특한 위치가 간호사에 대한 새로운 시장수요를 끊임없이 창출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수요는 보건의료 서비스에 관한 규제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팽창한다. 병원 밖 일자리. 최근에는 학교와 보건소 외에도 제약회사나 보험업 및 제조업에 해당하는 산업체에서도 간호사를 채용한다.

이때도 버티지 못하고 탈출한 전 직장, 병원은 경력을 분절시킨 출발점이자 영원한 비교군으로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간호사 면허라는 단일 채용조건은 구직의 허들을 낮추는 우대조건이 아닌 미끼와 같다. 경력개발과 성과를 기반으로 근로조건을 협상할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대근무 없는 상근직, 아프고 성난 환자나 선임이 없는 사무직, 의사의 처방이 아닌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연구직은 무작위로 배치된 병동이 아닌 까다롭게 고르고 선택한 직장이다. 연봉인상은 고사하고 4대보험 가입과 정규직 전환의 기회마저 차단된 근로계약을 문제 삼기가 어려워진다.

태움, 소진, 처우개선 등 사회적으로 간호사를 둘러싼 단어들은 ‘간호사가, 간호사는, 간호사라서’와 같이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 난다. 넘쳐흐른 말들은 다시 간호사에게 수렴한다. 간호학과를 선택한 네가, 신규간호사를 태우는 선임간호사가,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간호사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간호대 교수들과 간호협회가 문제라는 식이다. 마치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논의가 ‘여성이, 여성은, 여성이라서’와 같이 여성에 대한 이야기만 넘쳐 여성이 변화의 시작이자 끝으로 남겨지는 현상과 흡사하다. 하지만 버티지 못한 것은 네 능력이라는 말은 간호사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이직을 유도하는 시장의 논리다.

그렇다. 부당해고와 권고사직에 따른 비용과 사회적 논란을 회피하고자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전략으로 자발적 퇴사를 유도한다. 의료기관은 복잡한 계산마저 필요 없다. 정부가 앞장서 근로기준법과 법정 근로시간에 예외를 두는 한편, 보건의료체계의 질관리를 위한 법률과 보상제도에는 상응하는 처벌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의 처우개선 요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요구와 맥을 같이한다. 근로시간 외 추가노동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라. 의료법에 의거해 간호사 정원을 준수하라. 건강보험공단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나 야간간호서비스 제공을 위해 간호사 인건비로 책정한 보상을 지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