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있다. 한 소년이 자꾸만 늑대가 나타난다고 거짓말을 했더니 나중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던 우화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법. 이야기를 뒤집어서 생각해 본다. 소년의 목장에는 매번 늑대가 나타나 양들을 위협했다. 소년은 힘겹게 늑대를 물리쳐서 양들을 지켰지만 뒤늦게 찾아온 마을 사람들은 늑대가 돌아가고 나서야 현장을 보며 "또 저러는군"이라는 비아냥과 함께 사라졌다. 소년의 목장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할 양모와 유제품을 생산하는 공간이었지만 결국 모두 늑대에게 잡아먹히면서 폐업 수순을 맞이하게 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si=_h0vZbZfJq6w2tJU&v=s4TqBnVNriU&feature=youtu.be
뜬금없이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마치 한국사회의 담론장에서 공공의료기관의 재정상 어려움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취급받고 있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어서다. 해방 이후 단 한번도 넉넉한 살림을 꾸린 적 없었던 공공의료기관이지만 '어렵다'는 말이 반복되니 심각한 논의조차 대중적인 관심을 상실해 버린 듯 하다.
공공의료기관, 어떤 상황인가
실제 지역 현장에서 체감하는 공공의료기관의 경영 상황은 심각하다. 지표상으로도, 현실로도 그러하다는 의미다.
우선 지표상으로는 2023년도 회계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만큼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사용된 자료를 기반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35개 지방의료원의 병상가동률은 2023년 6월 기준 평균 46.4%로, 코로나19 이전인 지난 2019년(80.5%) 대비 평균 41% 떨어졌다. 일평균 외래환자 수도 22% 감소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으로부터 제공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감염병 전담병원 역할을 했던 35개 공공병원(지방의료원)은 2023년 경영실적을 추산했을때 2023년 약 2,938억6,000만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19년과 대비했을때에는 약 3,231억3,000만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사진=보건의료노조
반면 지방 공공의료기관에서 의사를 고용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충북 단양군보건의료원은 개원을 앞두고 응급의학과 전문의 또는 응급실 5년 이상 경력 전문의 1명을 구한다는 모집 공고를 4회나 내고, 연봉 4억2,000만원에 리모델링한 아파트 임대, 휴양지 별장을 제공한다는 조건까지 내걸어야 했다(기사링크). 2023년 11월 3억8,400만원의 연봉으로 구인을 시도했으나 수포로 돌아가면서부터다. 국립대병원 역시 인력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의사 연봉이 가파르게 오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 국립대병원에서는 올해 계약직 의사 연봉 액수가 전임 교수 연봉을 넘어선 지 오래다.
지방과 의료를 보는 현실’들’
상황이 이렇지만 공공의료기관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미진하다. 공공의료기관 종사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회복기 재정 지원'등의 예산지원이 없는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주민들이 필수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진료과목이 폐과되는 등의 사태가 이어지고 있으나 각종 정치적 주체들은 이 문제에 대한 특별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존재하는 주민의 고통과 정치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정치적 논의에서 ‘지방’과 의료를 보는 복잡한 현실들을 읽을 수 있다. 한국의 ‘지방의료’ 논의는 “지방 사람들도 다 서울 큰 병원 가는데 지방의료원이 굳이 필요하냐”는 말과 서울로 떠날 수 없는 주민들의, 지표 혹은 담론으로 드러나지도 않는 복잡한 고통의 현실’들’ 속에 존재한다. 아무리 시민들의 여론이 커져도 들은 시늉’만’ 하고는 바로 잊어버리는 국가의 동학은 담론, 그리고 담론과 정책을 다루는 정치권력이 어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서는 2023년 11월 발행된 HSC의 글 “해방의 권력”참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부분의 사회적 정책은 시민들의 여론과 정치적 압박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현상은 공공의료기관의 위기가 ‘위기’인 채로 방치되는 하나의 요인이 된다. 하지만 사안의 복잡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건강과 보건, 의료에 숨겨있는 태생적인 보수성, 즉 국가중심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의료와 건강을 둘러싼 교차점 : 국가와 지방
‘국가중심성’은 단순히 건강과 보건, 의료 의제의 국가 친화성이라는 추상적인 차원의 비판을 위한 단어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지방정부가 나서 지방의료원을 지원하기 어렵게 하는 힘이자 국가가 보건의료 의제를 수도권 중심적으로 사고하게 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