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의료 대란’이라고 합니다. 의사가 없고, 병원에 가지 못해 ‘새삼스럽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 ‘대란’이 새삼스럽지 않은 사람들, 한평생 ‘대란’속을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눈에도, 의사들의 눈에도 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분노를 분노로, 아픔을 아픔으로 말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를 찾습니다. 정치가 만들어야 할 ‘주민의 자리’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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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각 병원에서 근무하던 전공의들이 지난달 19일부터 사직서를 제출하고 현장을 떠났다. 신문과 방송에는 연일 사직서를 낸 의사들의 숫자와 병원을 찾아 헤맸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뉴스, 쏟아지는 대책, 정작 존중받지 못한 주민들의 목소리… 비록 원인이 달랐지만 이번 '재난'의 전개는 상당 부분 2020년 코로나19 초기를 떠오르게 했다.
'대란'이라는 단어 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가 무섭게 포털 사이트 메인에는 '불안감'을 강조하는 뉴스들이 떠올랐다. 서울 대형병원에 예약을 해 두었는데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몰라 혼란스럽다는 의견부터 이제 새벽에 아프면 어쩌냐는 걱정까지, '불안'은 여전히 관심도가 높은 뉴스거리였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정부는 2월 19일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 운영 개시를 시작으로 군병원 응급실 24시간 개방(2월 20일), 공공의료기관 비상진료체계 운영 계획 발표 (2월 21일), 비대면진료 전면 허용 (2월 23일) 등 2월에서 3월 사이에만 47건이 넘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듯 열을 올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구'를 위한 대책인지 의문스럽다는 점까지 2020년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극심한 적자, 부실한 지원, 시장논리에 의해 돌아가는 의료체계의 허점을 모조리 떠안은 250병상 공공병원이 갑자기 대학병원급의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은 당연지사였다. 거기에 '비대면 진료 전면 허용'까지, 실제 주민들의 불안을 줄이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진=국립중앙의료원 매거진 OO(공공) 2호 '나이가 들다, Aged’
이 가운데 "우리 중 가장 위중한 이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양보하자¹"는 대응책까지 나오자, 주민들은 없어진 의사를 대신해 '누가 우리 중 가장 위중한지' 판단해야 하는 지경에 놓이게 됐다. 정부가 '양보'와 '성숙한 시민의식'에 찬사를 보내는 사이 글자를 해독하는 일조차 배울 기회가 없었던 농어촌 주민들은 물었다. "그래서 병원에 갈 수 있기는 한 거냐, 어떻게 가야 하는 거냐"고 말이다. 병원까지 버스를 타고 한 나절 가야 하는 동네의 주민들은 통화량 폭주로 병원 안내전화마저 먹통이 되자 영문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주민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나 비대면진료가 연결되는 세련된 홈페이지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과연 내가 병원에 가야 하는지, 언제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줄 '사람'이었다. '대란'이건 아니건 그 '사람'이 없어 주민들은 언제나 힘들었고, 아팠고, 숨졌다. 그 죽음은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포털 사이트의 한켠조차 차지하지 못하고 '독거노인 사망' 같은 건조한 뉴스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 언제나 그렇듯, 공론장의 기억과 명명은 '정치적'이다.
자치를 찾는다
이 정치적인 기억과 망각 속에서 '대란'이라는 단어를 다시 돌아본다. 저마다 작금의 상황을 '의료 대란'이라고 명명하는 동안 공론장을 채운 목소리는 누구의 것이었나. 2021년 기준 치료가능사망률 전국 평균 43.7명, 그러나 강원 49.61명, 경남 47.28명, 부산 46.90명, 충북 46.41명. ‘지표’라는 보수적인 통계가 망각한 주민의 고통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서울이 탄생한 뒤의 지방은 언제나 명백한 '대란'을 살아왔다.
정부는 연일 '의료 개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무너지는 지역필수의료를 살려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언제 어디서나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선전한다. 정부가 내건 ‘안심’이 무엇이며,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가 무엇인지 주민들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의사들이 줄줄이 사직서를 내자 한국이 자랑하는 의료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지방의 공중보건의들마저 서울로 불려 올라갔다는 사실이 남아있을 뿐이다. 국가의 결단 아래 지방정부의 반대도, 주민들의 항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지방의료를 살린다는 미명을 내건 이 사태 앞에서 지방은 한없이 무력했다. 의료개혁 뒤에 찾아온다는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 그리고 ‘안심’이 누구의 삶과 눈높이에서 이뤄지는 성과인지 되묻는 까닭이다.
정부는 2,000명, 의사들은 반대를 외치는 동안 주민들은 여전히 파스 두 장을 받으러 오늘도 의사가 떠나 텅 비어버린 보건지소 진료실 앞에 줄을 선다.
“요즘 허리 아프고 배도 아프고 오줌에 피 섞여 나온다면서, 얼른 병원 가 보세요.”
“나이 들면 다 그런겨, 병원까지 언제 가나, 파스 두 장만 받으면 되는기라. 의사도 없어서 진료도 못 본다 안 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