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모든 취업자’의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하겠다던 상병수당. 시범사업 진행 과정에서 대상자 범위가 잔뜩 쪼그라졌습니다. 지금 이대로 도입된다면 대부분의 일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쉬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상병수당 시범사업 대상자를 둘러싼 우리의 걱정을 나누려 합니다. 쪼그라든 니트를 원래 내 마음에 들었던 모양으로 되돌리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쪼그라들어 작아진 니트에 맞춰 내 머리와 팔 둘레를 줄일 수도 없고요. 그럴 땐,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니트를 새로 마련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범사업 모형에 얽매이지 말고, 본래의 취지를 잘 반영한 상병수당을 고민할 때가 아닐까요?

K-상병수당 요모조모는 시리즈로 나갑니다.

24.02.27 K-상병수당 요모조모-①상병수당 알아보기

</aside>

“아프면 쉴 권리”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우리 사회에 형성된 공감대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일하는 사람들이 아파도 못 쉬는 한국에서 이런 무관심이 또 있을까요. 아파서 일을 못 했을 때 주는 급여, 상병수당은 정작 22대 총선 과정에서 이 상병수당은 미니 공약으로도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국회 의석은 상병수당에 무관심한 정당들의 차지가 되었고, 이 무관심 속에서 상병수당 3단계 시범사업 모형이 ~조용히~ 발표됐습니다. 🤫 (2025년 도입하겠다던 애초의 계획은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에서 2027년 시범사업 ‘제도화 검토’를 하는 것으로 더 조용히 변경되었습니다.)

Untitled

지난번 K-상병수당 요모조모-①에서 우리는 한국에서 ‘상병수당’의 핵심인 ‘상병’ 즉, 건강문제가 너무나 좁은 범위에서만 인정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3단계 시범사업 대상 지역 선정 결과를 보면, 업무 외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 하지 못해 입원은 물론 재택, 외래 등이 필요한 상태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상병’ 기준은 조금 넓어진 듯합니다. 1-2단계에서 최장 120일 이었던 급여 기간이 3단계에서 150일로 더 길어졌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아참, 3단계 시범사업 선정 지자체 네 곳을 발표하면서 시범사업 모형을 함께 제시한 것이니, 3단계 시범사업 모형을 왜 이렇게 설계했는지에 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답니다. 🤷🏻‍♀️)

다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적다는 점입니다.

아픈 노동자, ‘상병수당’의 허들을 넘을 수 있을까?

한국형 상병수당의 대상자 정의는 이 제도가 2020년대에 새롭게 도입된다는 사실을 새삼 보여줍니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문법에 따르면 자영업자, 그리고 이들과 유사한 고용 성격을 가진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최근 생겨나는 새로운 일자리는 제도의 대상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부도 변화하는 노동시장을 외면할 수만은 없겠지요. 임금 노동자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고용보험 또는 산재보험 가입자임을, 사업소득자는 사업자 등록한 자영업자임을 증명하면 상병수당 제도의 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기존 제도가 외면했던 노동자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가 제도의 대상으로 정의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불규칙하게 일하고 있어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은 가입되어 있지만 건강보험은 가족 명의로 되어 있던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한국형 상병수당, 그렇다면 받기도 쉬워지고, 일단 받으면 생활이 될 정도로 후할까요? 정부가 상병수당의 기준으로 제시한 자격요건을 요리조리 분해해 살펴보자면, 일하다가 까다로운 절차에 따라 상병이 인정되더라도 앞서 살펴본 취업자 요건을 충족하기 전, 다음의 여섯 가지 허들을 넘고, 넘어야 대상자로 최종 ‘선정’될 수 있습니다. 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② 만 15세 이상 65세 미만 연령대이며, ③ 앞서 언급한 건강보험 직장가입(1개월 유지), 고용보험 또는 산재보험 가입(1개월 유지), 또는 사업자 등록(3개월 유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④ 가구 합산 건강보험료가 하위 50%(기준중위소득 120%) 이하이면서 가구 재산 합산액이 7억원을 넘지 않아야 하고, ⑤ 공무원이나 국·공립학교 교직원이 아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⑥ 다른 제도로부터 급여나, 자동차보험을 받지 않아야 하고요. 과연 이 조건을 충족하는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요? 😒 이 모형대로 제도가 도입된다고 가정하고 대략 추산해 보면 2023년 한국 취업자 2,876.4만명 가운데 약 3.4%, 100만명이 상병수당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8세 미만의 모든 아이들에게 일정 금액을 보장하는 아동수당의 대상자 수는 약 245만명 입니다.

상병수당 대상자 선정 절차. 모든 요건을 증명해 내야 최종 대상자로 선정되어 급여를 받을 수 있답니다.

상병수당 대상자 선정 절차. 모든 요건을 증명해 내야 최종 대상자로 선정되어 급여를 받을 수 있답니다.

일하는 사람

이와 같은 방식의 ‘허들’은 뭐가 문제일까요? 흔히 제도를 둘러싼 노동시장의 변화를 쉽게 ‘고용 관계’를 중심에 두고 논의합니다. 하지만 노동시장 변화는 비단 고용 관계와 관련한 제도적 변화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구성 변화를 동반합니다.

일하는 이주민과 노인의 증가는 두드러지는 변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한도도 늘리고, ‘공식적’으로 이주 가사노동자 제도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들의 삶과 건강에는 도무지 관심 없어 보입니다. 일하는 노인의 삶과 건강은 또 어떤가요? 정부는 고령화를 국정 과제 삼고, 노인일자리를 늘릴 방안을 고민하지만 일하는 노인의 삶과 건강은 여전히 나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폐지 줍기, 가족/타인 수발 등 이들이 하는 여러 ‘노동’은 대상자 범위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애초에 이들은 그렇지 않아도 건강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점을 떠올리니 뉴-상병수당에 대한 기대가 한풀 꺾이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