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의료공백 사태로 튄 불똥이 간호계로 번졌다. 여야는 정치지형을 초월해 유사한 내용의 간호법을 제출한 걸로도 모자라, 진료 공백을 매울 방편 가운데 하나로 오랜 세월 감히 불려서는 안 될 존재로 남아있던 PA를 정부 공식문서에 등장시켰다. 사실 점 하나만 찍고 국회로 돌아온 간호법처럼 PA라는 제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병원을 지탱해 왔다. 오늘은 간호법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가 말하지 않는, PA간호사라는 이름의 병원노동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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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5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직역 간 '과도한 갈등'과 지역사회를 포괄하는 간호업무 범위가 국민들에게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의대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전공의 집단 사직과 의사단체의 반발은 간호계를 또다시 뒤흔들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을 거부하는 전공의들이 대거 병원을 이탈하자 정부가 태도를 바꿔 연일 “묵묵히 환자의 곁을 지키는" 간호사의 헌신과 노고를 치하하고 있는 점이 대표적이다.

정부와 국회의 파격적인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월에는 PA를 (가칭)전담간호사라고 칭하는 시범사업이 발표되었다. 새로 구성된 국회에선 본회의가 열리기도 전 벌써 두 건의 간호법안이 새로 발의되었다. 오랜 세월 감히 불려서는 안 될 존재로 남아있던 PA가 정부의 공식문서에 등장한 것도 모자라, 여야 정치인들이 유사한 내용의 간호법을 제출한 것이다.

미국에서 수입된 PA라는 직군은 말 그대로 의사의 의료행위를 보조하는 의사보조인력(Physician's assistant)이다. 다른 말로는 진료보조인력, 진료보조인 등등 변주가 가능하다. 뭐하는 사람인고 검색해보면 연관검색어 상단에 'vs Nurse Practitioner'가 뜬다. 모르긴 몰라도 의사보조인력이 간호사와 구분된다는 것 정도는 알겠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횡행하는 PA간호사, 정부가 일컫는 (가칭)전담간호사라는 혼란스러운 용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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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uty of care: legal, ethical and professional issues for nurses

보건복지부의 발주를 받아 대한의학회에서 수행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병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도입된 PA제도는 전공의 수급불균형으로 인해 전공의 업무를 덜거나 대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PA들의 활동영역과 업무범위는 전공의를 충원하지 못하는 진료과목과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왔다. 하지만 모름지기 '대체재'라는 것은 성능과 가격에 경쟁력이 충분해야만 한다. 전공의보다 적은 인건비로 전공의에게 요구되는 의료지식을 갖추고 장시간 고강도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인력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난번 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의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시행되는 대규모 신규간호사 채용은 주어진 노동환경에 불평불만 없이 묵묵히 버텨낼 일꾼을 효과적으로 선별하고 배치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전공의 수련을 책임져야 할 대학병원, 상급종합병원들은 별도의 채용, 교육, 훈련 과정이 없어도 전공의를 대체할 인력을 수월하게 공급할 수 있었다. 나날이 성장하는 보건의료 서비스와 노동 시장에서 직군 간 업무의 범위, 책임, 권한을 배분하고 고용과 투자를 강화하는 대신 PA간호사라는 이름의 사내하도급을 제도화한 것이다.

병원간호사회에서 매년 시행하는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전공의법이 시행된 해 약 2921명으로 추산되던 PA의 수는 2019년 약 3년만에 4136명, 2021년에는 5619명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임상병리사나 응급구조사 자격을 얻은 뒤 PA로 근무하는 경우를 제외한 수치다. 기관마다 부르는 명칭은 제각기 다르지만 분명한 수요가 존재하는 만큼 정부와 의료단체들도 마냥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2011년 대한의학회 보고서에서도 ‘진료보조사’의 교육, 역할,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제안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10년 간 이어진 침묵을 기념하기라도 하듯, 복지부는 2021년부터 ‘진료지원인력’에 대한 실태조사와 인력관리 운영체계에 관한 연구용역 및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특히 ‘진료지원인력 타당성 검증 시범사업’은 대한전공의협회의 반대성명에도 불구하고 2023년 4월까지 전국 10개 의료기관에서 실시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 6월부터 9월까지 5차례 개최된 진료지원인력개선협의체에서는 대한병원협회, 대한전공의협회, 병원간호사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대표자를 포함해 시범사업에 참여한 기관에 소속된 교수와 간호사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서로의 이해관계와 정책적 대안을 논의했다고 한다([복지부 "PA 정식 명칭 등 연말까지 정리”]).

여기에 2020년에 이어 2024년 반복되고 있는 전공의 단체행동은 기폭제가 되었다. 의료공백을 메꾸기 위한 동원책으로 PA제도의 필요성을 체감한 정부는 서둘러 PA제도의 양성화, 업무범위 정립, 법적 보호라는 카드를 꺼냈다. 급히 발표한 단 2쪽짜리 시범사업 계획안에는 딱 그만큼의 내용이 실려 있었다. 구체적인 사업목적과 수행기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이 시범사업은 온통 진료공백 해소를 위해 법적 보호를 해주겠다면서 업무범위는 병원마다 알아서 잘 정해보라고 한다. 새로 발의된 간호법에서도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겠다는 공수표 뿐이다. 신청절차도, 예산할당도 없이 한시적으로 운영된다는 시범사업과 거부당한 문제적 내용은 모두 수정했다는 법안으로는 급한 불을 끄기는 커녕 부채질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2023년 5월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이후 대한간호협회가 발송한 웹포스터

2023년 5월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이후 대한간호협회가 발송한 웹포스터

이미 여러 병원에서 적자를 이유로 간호사에게 강제휴가를 종용하며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전공의 없다고 간호사에 “연차 써”…근로기준법 위반 지적]). PA제도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은 직군별 업무범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기관 내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고용관계가 병원노동자인 전공의와 간호사 모두의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위계에 의한 중간착취를 장려하기 때문에 동일한 업무를 하는 서로 다른 직군 간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병원은 누군가의 직장이기도 하다. 의사도 간호사도, 혹은 그들의 업무를 떠맡은 또 다른 사람도 결국은 고용계약을 기반으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이다.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로 인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열악한 근무환경에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