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9일, 서울을 포함한 각 지역 병원에서 전공의가 병원을 빠져나가자마자 미디어는 첫 번째 뉴스 꼭지로 ‘의료 대란’이 일어난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동안 미디어가 ‘중계’한 현장과 언어는 누구를 대변했나? ‘대란’이라는 단어가 상당 부분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이 ‘사실’이 어느 층위의 사실인지, 미디어가 실어 나른 언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미디어의 말과 글은 시민의 입장에서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는가? 6개월 동안의 보도를 들여다봤다.
‘부산’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동네, 해운대구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고층빌딩과 들뜬 표정으로 나온 여행객들이 첫 번째 얼굴이라면 두 번째 얼굴은 권력이 만든 틈새에 조명을 비춰야만 만날 수 있다. 해운대구의 남과 북을 가르는 634m의 험준한 장산 뒤편에는 치열한 산업화의 시기를 거치며 켜켜이 세월을 맞아온 낡은 건물, 산세가 만든 비좁은 골목 속에서 살아가는 10만여 명의 사람들이 있다. 이곳 반송동은 1968년 한참 도심 개발에 열을 올리던 부산시가 시내 일대 수재민과 철거민을 단체 이주시키면서 만들어진, 폭력적인 ‘근대화’의 단면이기도 하다. 인근 반여동에도 1972년 부산시가 시내 철거민 이주 정책을 또 한 번 시도하면서 생긴 마을들이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놓여있다. 지금은 지하철 4호선이 놓이고 수영강변에는 번듯한 아파트가 있지만, 이주의 흔적을 보여주는 네모반듯한 주택가에는 비좁은 골목을 따라 많은 수의 노인과 장애인이 산다.
◇반여·반송동과 해운대 백병원을 오가는 것은 장산이 두 지역 사이를 막고 있어 어렵다. 대신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동래구의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가파른 경사를 따라 산자락에 위치한 주거지역에서 지하철역까지 오가는 것은 노인과 장애인에게는 꽤 어려운 일이다. 카카오맵에서 캡처한 지도에 HSC팀이 정보를 추가하여 그림.
반여동과 반송동 일대에서 인근 대형병원인 해운대백병원까지의 거리는 10km 남짓, 곧바로 자가용을 몰아 달리면 30분이 걸린다. 그러나 주민들이 병원을 이용하기란 쉽지 않다. 전후 복구와 고도성장을 거치며 한때 ‘산업 역군’으로, 혹은 ‘철거 대상 빈민’으로 현대사의 한복판을 거쳐 온 이 지역 원주민들은 이제는 그 권력이 켜켜이 남긴 흔적 속에서 아픈 다리와 허리,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살아가는 까닭이다.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 버스정류장까지 이동하고, 또 ‘미친 듯이 막히는’ 부산 시내 한복판을 버스로 지나야만 하는 병원 가는 길, 이들에게 대학병원 혹은 대형병원이란 ‘가깝기에 더 먼’ 존재다. 해운대백병원 증축 계획을 두고는 ‘부동산 호재’라는 소문까지 붙으며 환영받는 것과 아주 대조적이다. 병원 이용은 이토록 계급과 직결돼 있다.
변하지 않은 것
2월 19일, 전국에서 각 대학병원 전공의가 대학병원을 빠져나간 직후에도 이곳 주민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같은 지역 병원을 두고도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길고 지난한 여정, 주민들이 대형 병원 대신 아픈 몸을 의탁하던 작은 지역 보건의료기관에는 이전부터 전공의가 없었다. 연일 사진으로, 또 영상으로 중계되는 서울 상급종합병원의 긴 대기 줄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반여동과 반송동 주민들도 이용하는 부산 동래봉생병원 전경. 사진출처=부산역사문화대전. https://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16005
◇서울 대형병원의 대표 격인 세브란스병원 전경. 사진출처=세브란스병원 보도자료. https://gsph.yonsei.ac.kr/sev/news/press/report.do?&mode=view&articleNo=120424&articleLimit=48
지난한 현대사의 한켠에 조명을 비춰야 비로소 입체적으로 보이는 지역의 일상을 자세히 옮겨 적는 데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보건의료 의제가 언론사마다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지만, 지역 주민들이 어떤 의료를 이용하고, 또 어떤 부재 속에서 살아가는지는 자세히 보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의료’의 대표 격으로 불려 나오는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의 사정마저 그렇다. 앞서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들’을 통해 밝혔듯 지역 대부분이 부재 속에 놓여 있는 농어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재미있는 점은 미디어가 보건의료를 매개하는 방식 역시 파업 전후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주민은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지만, 미디어가 보건의료를 매개하는 관점은 서울 대형병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방의 작은 병원을 이용하던 환자들이 어떤 사정 속에서 살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 공화국’ 세계관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 ‘서울 언론’은 굳이 지역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을 포기한 지 오래다. 지역의 사정이 곪고 곪은 뒤에야 찾아가, 뒤늦게 호들갑을 떨며 ‘지방 소멸’ 같은 험악한 단어를, ‘단독’ 딱지까지 달아 퍼트려 왔을 뿐이다.
의·정 갈등 국면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어졌다. 주민들의 어려움이 등장해야 했을 지면에는 주민들이 얼마나 서울에 많이 가는지, 서울의 대형 병원이 얼마나 중요하고 고난도의 의료를 하는지, 서울 대형병원이 얼마나 어려운 경영 상태에 있는지가 등장했다. 진보지도 보수지도 차이가 없었다. 과연 ‘상경’을 엄두조차 못 내는, 작은 지방 병원을 정비소 삼은 일상을 들여다볼 생각은 했을까.
◇조선일보 2023년 10월 23일자 제 2면. 서울대병원 환자 22%가 각 지방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는 점을 요지로 다뤘다.
◇조선일보 2024년 6월 10일자 제 4면. 의사와 정부간의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서울대 의대 교수의 행방이 주요한 변수라고 서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