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은 그곳의 문화, 사람, 관계를 함축한다. 한 공간에 사회적 문제와 차별,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면 도시는 이 복잡한 관계를 지도처럼 담아낸다.

한국의 도시는 복잡하다. ‘다이내믹 코리아.’ 한국을 한 마디로 함축하는 이 문장이 서울이라는 대표적인 도시 곳곳에 살아있다. 출근길이면 마주하는 지옥철, 그리고 사람으로 붐벼 겨우겨우 타야 하는 버스야말로 이 치열한 서울의 욕망을 담아낸다. 도심에서 탐욕스럽게 세를 불리는 빌딩과 그 뒤에 밀려난, 구시가지의 주택은 이 도시의 사람들이 근대 이후 열중해 온 탐욕을 한 마디로 상징한다.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도 300만명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 숨 쉰다. 해안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늘어선 해운대의 고층 빌딩과 한적한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 그 뒤로 항구 주변으로 늘어선 냉동창고가 있고 더욱 깊숙이 들어가면 녹이 슬어 부식된 배와 더 이상 쓸 수 없는 그물, 한때 역동적으로 화물을 실어 날랐던 창고가 시간 속에 잠들어 있다(☞관련 자료: 의료대란 6개월,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해안선마저 밀어내고 탐욕스레 빌딩을 올리는 사람들 뒤로 채 덮지 못한 폭력적인 근대화의 과정이 부산 안에는 동시에 존재한다. 부산역 앞에 당도해 마주하는, 코가 벌게지도록 술을 마신 뒤 소리를 지르는 취객의 그림자도 이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다.

◇자료=Financial Times. https://www.ft.com/content/dca3f034-bfe8-4f21-bcdc-2b274053f0b5

◇자료=Financial Times. https://www.ft.com/content/dca3f034-bfe8-4f21-bcdc-2b274053f0b5

한국의 도시에 근대와 폭력, 강력한 국가가 자리하고 있다면 미국의 도시에는 ‘멜팅 팟’안에 우겨 들어간 인종, 그리고 계급이 있다.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퍽 낯선 풍경이다. 서로 다른 계급의 인종과 사람들이 섞이지 않도록 고속도로를 칸막이로 나뉜 구역, 조닝(Zoning)은 미국 사회를 함축한다. 조닝은 교외의 주거구역에 저층의 단독주택만 허용하며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를 엄격히 금지한다. 자연스럽게 차량을 소유한 부유한 가정만 단독주택에서 거주하게 된다. 차가 없는 외부인은 고속도로에 가로막혀 접근조차 할 수 없다. 단독주택밖에 없으니 인구밀도가 낮아 수익성이 아주 낮은 대중교통은 애초에 다니질 못한다. 조닝은 주거구역에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것도 금지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집이 없는 사람은 거기로 갈 이유가 하나도 없다. 부유한 백인들은 이렇게 겹겹이 둘러싸인 철옹성 안에서 산다.

◇자료=The New York Times. E. Badger & Q. Bui. (2019.06.18.) Cities Start to Question an American Ideal: A House With a Yard on Every Lot. The New York Times - The Upshot.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9/06/18/upshot/cities-across-america-question-single-family-zoning.html

◇자료=The New York Times. E. Badger & Q. Bui. (2019.06.18.) Cities Start to Question an American Ideal: A House With a Yard on Every Lot. The New York Times - The Upshot.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9/06/18/upshot/cities-across-america-question-single-family-zoning.html

이들이 이용하는 마트도 주거지역과 주거지역 사이 자동차로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장을 보러 가도 비슷한 경제적 지위를 가진 주거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만 마주치는 것이다. 이렇게 교외의 단독주택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자동차로 생활하는 것을 아메리칸 드림 (American Dream)이라고 한다. 아메리칸 드림에서는 치안 문제도 노숙자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외부인이 교외의 거주지역으로 침입할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교외의 백인에게 다운타운은 볼일을 보기 위해 잠시 방문하는 곳일 뿐이다. 그가 볼일을 보는 동안 끝없이 펼쳐진 주차장과 거대한 주차타워가 그의 자동차를 보관한다. 다운타운에 오래 있어 봐야 유색인종과 가난한 사람을 마주칠 뿐이므로 그는 볼일이 끝남과 함께 그곳을 떠난다. 이처럼 많은 이에게 다운타운은 스쳐 가는 곳이기 때문에 황량한 느낌을 준다. 도시 중간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까지 더해지면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다.

◇자료= Montgomery, Alabama 다운타운의 전경. 주차장은 노란색으로, 주차타워는 파란색으로 표시되었다. Montomery는 Alabama 주의 최대 도시이다. Montgomery, AL, USA Downtown Parking Lot Map : r/fuckcars

◇자료= Montgomery, Alabama 다운타운의 전경. 주차장은 노란색으로, 주차타워는 파란색으로 표시되었다. Montomery는 Alabama 주의 최대 도시이다. Montgomery, AL, USA Downtown Parking Lot Map : r/fuckcars

도시의 다운타운에는 높은 주차 타워가 일반 건물의 숫자만큼 많지만 도시 가운데로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며 뚝 끊어져 있다. 다운타운을 조금만 벗어나면 가게나 상업시설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자동차 없이 도보로 이동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지 거리가 멀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된 인도 없이 보행자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사이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형태기 때문이다. 신호등과 도로는 있지만 횡단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운 오롯이 자동차만의 공간. 영어로는 거리 (Street)와 도로 (Road)를 합쳐서 Stroad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료= Descriptivas De Narrativas Urbans - Neither a Street nor Road. Stroad http://descriptivasnarrativasurbanas.blogspot.com/2014/01/neither-street-nor-road-stroad.html

◇자료= Descriptivas De Narrativas Urbans - Neither a Street nor Road. Stroad http://descriptivasnarrativasurbanas.blogspot.com/2014/01/neither-street-nor-road-stroad.html

이처럼 미국의 도시는 많은 사람이 도시에 모여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한국의 도시와 명백히 다르다. 너무나도 황폐하고 지루하다. 이 지루한 도시의 진짜 문제는 세수 부족까지 야기한다는 데 있다. 주택만 있는 교외에도, 사람들이 스쳐 가는 다운타운에서도 충분한 경제활동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걷을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정부는 이러한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다. 다운타운이 경제적으로 침체되고 교외 주거지역이 크기 때문에 아주 넓은 면적에 적은 수의 사람들이 산다. 넓은 지역에 도로, 상하수도와 전력 인프라를 유지해야 하지만 사람은 적기 때문에 유지 비용이 세금과 이용료보다 더 많이 든다. 경찰서나 소방서 같은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는 이를 유지할 돈이 없기 때문에 끝없이 재정난에 시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