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여섯 번째 이야기: 어느덧 7개월, 질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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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13일 한국시간 오후 8시. 보건의료 연구그룹 Health Socialist Club(이하 HSC) 구성원 6명이 화상회의 화면 앞에 모여 앉았다. 7개월이 훌쩍 넘은 ‘의료 대란’을 돌아보며, 시민사회의 관점에서 제안 가능한 대안을 내 보기 위해서였다.

HSC는 그동안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시리즈를 통해 2024년 한국 의료 현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복기해 왔다. 이를 통해 현재 한국에는 첨예하게 정치화되고 있는 문제와 별개로, 그동안 말해지지 않은 지역 주민의 고통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사태 해결 역시 ‘환자와 시민의 관점에서’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데서 출발한다고 제안했다. 더해, 2024년 한국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사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앞으로 의료 현장을 의사의 특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대신 다른 노동자, 시민과 함께 보다 나은 노동환경을 만드는 방향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출발해야 할까. 그 방향은 지금까지 정부나 의사 집단은 물론, 시민사회 영역에서도 ‘오리무중’인 상태로 놓여있다. 여기서는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기획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지난 6개월간 떠오른 여러 질문에 대해 ‘답’을 달아본다. 대담에 참여한 HSC 멤버들은 모두 국내외 연구기관에서 건강과 사회, 그리고 이를 논의하는 데 꼭 필요한 기초 사회과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담에는 모두 HSC 소속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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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화 만사 제쳐놓고 급한 문제부터 말해보자. 언론에 등장하는 ‘응급실 붕괴’를 비롯해, 당장 환자들이 느끼는 불편이 심각하다. 우리는 ‘환자의 필요’ 그리고 ‘시민의 필요’에 대해 계속 주장해 왔는데, 지금 어느 필요부터 손을 대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가.

◇최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구급차가 서 있다. 사진=HSC

◇최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구급차가 서 있다. 사진=HSC

6개월과 의료 시스템, “정치화되지 않은 시민의 필요가, 곳곳에 있다”

김진환 우선 한국 전체 인구를 두고 보자. ‘응급실 뺑뺑이’ 문제가 분명히 있겠지만 응급의료를 이용하는 사람은 한달에 50만명에서 70만명 정도이니(☞관련자료: 김윤,“진료역량 최상 권역응급센터의 중증환자 전원이송 증가로 지역응급센터 부담 확대…중증환자 사망 증가”_240910), 데이터를 두고 보면 사실 소수의 문제다. 정치화되는 것 자체가 의미 없지 않으나, 지금 정치화되는 방식이 누구의 문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 급한 문제? 한국사회는 누구의 필요를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는 문제가 가장 급하다. 의료 이용의 문제에 있어서 응급실과 관련한 부분이 과잉 대표된다면, 지금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어느 필요부터 손을 댈 것인가? 이것은 전문가가 정의할 문제는 아니다. 정치화되지 않은 필요가 지금도 곳곳에 있다. 이 필요의 우선순위 자체를 시민이 정의해야 한다.

문주현 사실 HSC의 이번 기획 역시 ‘폭발의 지점’에만 주목한 감이 있다. ‘전공의 이탈’과 이로 인한 문제는 중요하지만, 그전에도 문제는 있었다. 이를테면 환자가 길에서 사망하거나, 구급차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사건 배후에는 기존부터 지역 일차의료기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중소병원의 기능도 충분치 못하다는 점이 있다.

주민들은 각자 알아서 큰 병원과 ‘명의’를 찾았고,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주민들의 행동을 ‘수도권 쏠림’이라고 비난했다. 그동안 지역에선 분만실을 운영하던 산부인과가 폐업했고, 의사들은 화상을 입거나 중증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를 전문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에 보내는 걸 자연스럽게 여기게 됐다. 그렇게 계속 문제가 쌓여왔다. 지금 대학병원에 몰입한 논의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병원에 전공의들이 돌아오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나?

김진환 당장 지역에서 차출돼 간 공중보건의사 문제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공중보건의사가 ‘빠져나갔다’는 사실 자체는 주목을 받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땠나? 이번 사태에서도 지역 문제는 서울과의 연계가 있는 부분만 딱 잘라 주목 받았다. 관심이 끊긴 상황에서 주민들은 계속 아프고 죽었다. 이 말은 누가 하나? 지금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잘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한빈 의료 문제가 단순히 지도 펼쳐놓고 여기는 어떻네 하고 정의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노숙인 진료에 참여하면서 보면, 거동이 불편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병원에 오기 어려운, 높은 지대에 산다. 그러면 걷기도 힘든데 호흡기 문제까지 있어서 숨차고 힘든 상황에서 병원 가기도 어렵다. 교통 역시 불편하다.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편에서 했던 말이 이런 이야기다. 이런 사정이 과연 주목받았나? 의료 담론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필요’로 인정되었냐는 질문이다.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부산광역시 철마보건지소 앞에 의사 부재로 인한 진료일정 변경이 안내돼 있다. 사진=HSC

◇최근 부산광역시 철마보건지소 앞에 의사 부재로 인한 진료일정 변경이 안내돼 있다. 사진=HSC